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사설]그릇도 안 비우고 새 물 받겠다는 한국당 혁신선언
자유한국당이 진통 끝에 2일 발표한 혁신선언이 실망스럽다. 과거를 반성하고 신보수주의를 새로운 기치로 보수 정치세력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게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읽은 한국당 혁신선언의 요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 세력을 궤멸 직전의 지경으로 몰아 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언급과 평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또 혁신의 밑거름이 될 인적 쇄신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빠졌다. 결국 그럴듯한 말만 잔뜩 늘어놓았지 정작 필요한 내용은 하나도 담아내지 못했다.

혁신의 출발점은 통렬한 자기 반성이다. 한국당 혁신선언에도 반성은 나와있다. 그런데 도무지 반성의 절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선언문 내용만 보더라도 그렇다. 선언문은 “집권 여당으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와 역할을 망각하고, 권력획득과 유지라는 눈 앞의 이익에만 몰두했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 “무사안일과 정치적 타락은 총선 공천실패와 대통령 탄핵, 대선 패배라는 쓰라린 결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보수 정치세력은 사실상 와해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 상태다. 그 이유는 두 말 할 것 없이 박 전 대통령 비선 실세들에 의해 저질러진 국정 농단 때문이다. 그런데 선언문은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그 과정만 덤덤히 늘어놓고 있다. 누가 봐도 ‘뼈 저린 반성’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인적 쇄신 부분도 마찬가지다. 류 위원장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직시하고 철저한 혁신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당이 다시 일어서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참신하고 유능한 인적 자원을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이다. 혁신위도 이를 당에 강하게 주문했다고 한다. 새 물을 받으려면 우선 그릇을 비워야 한다.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세력의 청산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과 친박 세력 책임론은 어디에도 거론되지 않았다. 오수가 담긴 그릇에 아무리 깨끗한 물을 채워도 마실 수가 없다. 당 내부에서 조차 진정한 개혁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상대 정치 세력을 폄훼하는 듯한 내용을 굳이 끌어넣은 것도 실망을 더하게 하는 대목이다. “광장민주주의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을 막고, 다수의 폭정에 따른 개인 자유의 침해를 방지하겠다”는 부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아빠진 보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종북 프레임 씌우기 같은 구시대적 발상을 떨쳐내지 못하면 한국당의 ‘혁신’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