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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강태은 프렌닥터연세내과 비만클리닉 부원장]‘한국으로의 긴 여행’
15년 전 잡지 부록으로 받은 파란 비치 백에 수영복과 물안경을 싸 두고 아빠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바캉스 가요.” 한여름 반바지를 입는 내내 조르고 또 졸랐던 아들을 마당에 엉덩이 하나 담글 작은 튜브로 풀장으로 삼고, 물 나오는 호스를 파도로 삼아 달랬다. 당시에는 시간도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필자도 어느새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청춘의 허물을 벗고 열심히 제 밥상을 채우는 ‘생존형 어른’이 돼 가던 중이었다.

몇년 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의 갈망으로 우리 가족은 그해 여름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비행기 이륙 직전까지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채워 가던 우리와 달리 아들의 머리는 한달 전부터 여행지의 도시를 누볐고, 가슴은 설렘 속에 ‘디데이’를 셌다.

이렇게 시작한 첫 ‘휴가여행’에서 필자는 여행의 관점을 바꾸는 소중한 세 가지 경험을 했다.

첫째, 돈을 주고도 되찾을 수 없던 천진난만한 아들의 미소였다. 영어유치원에 입학해 더 좋은 성적을 비교당하며 경쟁을 위한 훈련에 막 들어선 일곱살 꼬마 아들에게 찾아볼 수 없었던 웃음, 그 웃음은 추억 속에 묻혀 있던 신생아 때 웃음과 똑같았다.

둘째, 부부 소통의 시간이었다. 한때 서로의 관심을 종일 묻고도 모자라 밤새 통화를 하며 서로를 탐색하던 커플이었건만, 세상 앞에 부부를 서약한 이후 우리는 내일의 화려한 밥상을 위해 각자의 삶을 달리느라 서로에 대한 관심은 항상 뒷전이었다.

필자는 남편도 힘들었던 속내, 하고 싶던 꿈이 있음을 알았다. “사실 그때 힘들었다고, 가장의 갑옷과 남편의 명찰이 쉽지는 않았다고. 짊어져야 할 등의 짐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지만, 때로는 그 짐이 버거울 때가 많았다고. 또 가끔 내 용기가 고마웠고 멋있었다고.”

우리 부부는 그때 첫 만남의 타오르던 도파민의 불길 대신 서로를 지긋이 데워 주는 아궁이처럼 진정한 인생 동반자로서 연습을 시작했다. 또 꿈과 행복을 논하기에 냉정한 장애물로만 여겼던 현실 속 위기가 결국 꿈을 이뤄가는 인생 여정에 꼭 필요한 환승역이었음을 깨달았다.

셋째, ‘나에게 쓴 편지’였다. 비행기 좌석에 꽂힌 엽서. 편지의 수신인은 바로 ‘나’였다. “나 같은 주인을 만나 정말 힘들었구나. 넌 여행을 떠날 자격이 있어.” 7살 아들은 화장이 얼룩질 때까지 멈추지 않던 필자의 눈물을 조용히 닦아 줬고, 이 편지는 스스로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 됐다.

돌아오는 길, 아들은 좌석 중앙 화면 속 비행기가 한국을 향해 움직이는 그림 지도를 보며 끝나 가는 여행을 슬퍼했다. “아들, 우리는 지금 여행을 떠나는 중이야. 도착지는 한국, 한국으로의 긴 여행.” 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들은 필자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는 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일상을 여행처럼 살았다.

더 이상 설렘이 없던 승용차를 과감히 팔았다. 함께 땀 흘리고 걸으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 속 ‘마이크로월드’를 발견했다. 주말이면 아들을 가이드 삼아 산과 고궁을 안내받았다. 가이드의 대가는 맛있는 저녁이었다. 그리고 가끔 떠나는 짧은 외국 여행을 통해 서로의 꿈을 키워 나갔다.

이후 아들은 영국 친구를 만나 더 많이 놀고 싶은 꿈을 위해 영어를 좋아하게 됐고, 극진한 호텔 서비스에 감동해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경영을 꿈꿨다.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의 수고로운 땀과 노고를 볼 줄 아는 청소년이 됐다.

여행은 필자의 삶에, 멈춰 서야 보이는 것들을 멈추지 않아도 보게 해 주는 눈을 갖게 해 줬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걷고 있는 시간 여행자임을 잊지 말고 지금 이 순간, ‘한국으로의 긴 여행’을 즐겨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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