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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린내, 지린내, 썩은내…삶이란 그렇게 뜨겁고 지저분한 것
진화랑, 설치작가 김도희 ‘혀뿌리’전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2층 전시장을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작품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비린내, 지린내, 썩은내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작품은 수산물시장에서 생선을 담았던 나무상자다. 버려진 생선상자가 전시장 가운데 ‘산’처럼 쌓였다. 벽면엔 상자 판넬로 그린 심장박동 그래프가 붙었다. 쿵쾅쿵쾅. 설치작가 김도희의 작품 ‘피속의 파도’다. 한때 삶을 담아낸 상자는 죽음의 냄새만 진동하지만, 사실 우리 삶도 그렇게 징그럽게 뜨겁고 또 지저분하다.

김도희, 살갗 아래의 해변, 연마기로 갈아낸 벽, 가변설치, 2017 [사진제공=진화랑]

서울 통의동 진화랑은 김도희의 5번째 개인전 ‘혀뿌리’를 개최한다. “혀를 움직이는 근육인 ‘혀뿌리’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혀를 움직이는 핵심적 역할을 하듯 현상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게 전시장에서 만난 김도희 작가의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정서적 원형’을 추구하는 프로젝트다. 부산 영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작가는 당시 만난 수산시장의 기억과깡깡이(배 밑창이나 측면에 붙은 조개껍데기나 녹을 떨어내는 작업)를 전시장에 소환했다. “어릴적 조부모 손에 맡겨져 자랐는데, 그곳이 부산 영도였어요. 수산물 시장과 조선소사이 골목길이 놀이터였죠. 깡깡이 소리와 탄 쇠냄새, 술주정뱅이들의 주억거림, 수산시장의 비린내 이런것들이 저에겐 바다의 기억이자 삶의 원형이죠” 

김도희, 피 속의 파도, 유광페인트, 생선상자, 경매시장 종소리, 가변설치, 2017 [사진제공=진화랑]

작가는 ‘깡깡이 아지매’처럼 화랑의 벽면을 그라인더로 갈아냈다. 흰 벽면엔 놀랍게도 다채로운 색상이 숨어있었다. 섬세하면서도 서정적 느낌을 주는 회화작품처럼 보인다. 동시에 다양한 전시를 선보여 왔던 40년 화랑의 역사도 드러났다. 갈아낸 먼지는 버리지 않고 바닥 한 구석에 모았다. ‘살갗 아래의 해변’이라는 작품이다. 진화랑 관계자는 “전통적 화랑 기능에만 머물지 않고 확장성을 늘 고민해 왔는데, 김도희작가가 화랑의 지난 행보를 한 눈에 드러나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

홍익대 회화과출신인 김도희는 설치 작업을 주로 선보여왔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젊은 모색’전에선 아이 오줌으로 드로잉한 작품을, 2015년 알로호모라아파레시움 ‘더 텍사스프로젝트’에선 ‘미아리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집장촌에서 불에 탄 성매매 업소의 벽과 바닥을 걸레로 닦는 작업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작가가 작업대상으로 삼는 것들은 무척이나 거친 삶의 현장들이지만 쓸고, 닦고, 정리하고, 모으는 그의 작업방식은 가장 ‘여성적’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선 ‘더 텍사스프로젝트’의 기록을 책으로 묶은 ‘하월곡 88’도 선보인다. 전시는 8월 20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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