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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美中 핑퐁외교의 막전 막후
꽉 막힌 국가간 관계를 풀어내는 데 스포츠만한 수단도 없을 듯하다. 1971년 4월 미국 탁구 대표팀의 중국 방문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핑퐁을 매개로 죽(竹)의 장막이 열린 이후 적대적이던 양국 관계는 빠르게 개선됐고, 8년 뒤 정식 수교로 이어지며 사실상 냉전시대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른바 ‘핑퐁외교’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가 그렇다.

하지만 세기의 이벤트는 어느 날 뚝딱 성사된 게 아니다. 수면 아래서는 숨막히는 막후 교섭이 전개됐다.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중국통 국무부 관리 제이스 릴리의 자서전 ‘아시아 비망록’에 그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나와있다.

냉전시대가 한창이던 1960년대 먼저 화해 보낸 건 소련과 틈이 벌어진 중국이었다. 이를 재빨리 감지한 정치인이 리처드 닉슨이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닉슨은 공산 중국은 적이 아닌 미래의 협력자임을 연설과 기고를 통해 수시로 강조했다. 중국은 닉슨 대통령 당선자에게 평화의 서신을 보내며 화답했다.

이듬해 닉슨이 공식 취임하자 양국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접촉은 매우 은밀하게 이뤄졌다. 그 막후 채널을 맡은 이가 바로 닉슨의 안보특별보좌관인 헨리 키신저였다. 닉슨과 키신저는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조차 모를 정도로 비밀리에 움직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 1971년 첫 중국 방문길에 오른 키신저는 주위 시선을 피하기 위해 연막을 피웠다. 아시아 위장 순방을 기획한 것이다. 최종 행선지는 인도와의 분쟁 때문에 중국에 호의적인 파키스탄이었다. 파키스탄에 도착한 키신저는 배탈이 났다고 속여 며칠간 병상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체형(미리 미국에서 데려온 듯)의 경호원을 가짜 환자로 위장시켜 고급 승용차에 태워 조용한 사저로 이동시켰다. 그 사이 키신저 일행은 유유히 베이징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중국에 들어간 키신저는 실력자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만나 닉슨의 중국 방문 등을 협의했다. 그리고 그해 7월 미국 정부가 닉슨의 중국 방문을 공식 발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직전 등장한 게 미국 탁구팀이다. 키신저와 중국 당국은 양국 교류의 상징적 사절로 미국 탁구팀의 중국 방문에 합의한 것이다.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세계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핑퐁은 단지 정치적 판단을 수행하는 데 동원된 매우 평화적 도구였던 것이다.

얼마전 서울에 온 장웅 북한 IOC 위원이 평창 겨울올림픽 남북 단일팀을 구성 제안에 냉랭한 반응을 보이면서 미-중간 핑퐁외교의 예를 들었다. 그는 “탁구가 중미 관계를 개선했다? 세계는 ‘핑퐁 외교’로 됐다고 하는데 아니다. 정치적 환경이 해결돼야 한다. 정치는 항상 스포츠 위에 있다”고 훈계하듯 말했다. 릴리의 회고록과 맥락이 대체로 비슷하다. 아무래도 단일팀 구성은 물 건너 간 것같다.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인 것은 좋으나 성급한 판단이 너무 많아 보인다. 평창 단일팀 해프닝도 그렇고, 탈(脫) 원전 밀어붙이기도 그렇다. 소쩍새가 봄부터 울어야 비로소 한송이 꽃을 피울 수 있다. 조금 더 차분할 필요가 있지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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