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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雨요일의 雲치’…나홀로 거닐며 느끼는 ‘비움’
해발 1000m 절벽중턱 금수산 정방사
산위에 걸린 운무…한 폭 수묵화 연상

비둘기 둥지 닮은 포천 ‘비둘기낭 폭포’
물위를 걷는 착각 화천의 ‘숲으로 다리’
전남 진도 ‘운림산방’도 비오는날 제격


부탄 탁상사원과 지리산 사성암, 충북 제천의 금수산 정방사는 모두 절벽에 세워진 사찰이다.

그곳에 오르면 발 아래 펼쳐진 풍경에 도취돼 세상 시름을 잊는다. 부탄은 시간과 비용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고, 사성암은 산세가 험하다 보니 필부필부들이 셔틀 버스로만 갈 수 있는데 비해, 금수산 정방사는 2㎞ 산행길을 미음완보(微吟緩步)하며 걸어 다다를 수 있으니 부담이 없다.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에서 나와 리아스식 해안 닮은 청풍호 호변길의 정취를 호흡하면서 30㎞가량 남쪽으로 가면 능강계곡 입구를 만난다.

능강교에서 오른쪽 얼음골 생태길이 아닌, 왼쪽 정방사 표지판을 보고 능강계곡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정방사 주차장 부터 절까지는 가파른 길을 5~10분간 걸어 올라야 한다. 절 앞에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한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좁은 요사체 진입로이다.


▶ ‘선수(選手)는 절경을 감춘다’ =정방사는 금수산 의상대 아래 절벽 중간 턱에 착상해 있다. 해발 1000m가량 높이의 요사채 앞 작은 마당에 서면, 청풍호와 6월의 금수산 신록이 발아래 펼쳐지고, 가까이는 호수 건너 비봉산쪽 청풍문화재 단지가, 멀리는 남서쪽 월악산까지 보인다.

7세기 신라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사찰 세울 영지(靈址)‘로 콕 찍은 것을 보면, 좋은 풍경 있는 곳에 좋은 기운이 깃든다는 점은 진리인가 보다. 암석과 절벽 때문에 약 500년 전까지만 해도 백암산(白巖山)이라 불리다 퇴계 이황(李滉)이 단양군수로 재임할 때 이 곳 풍광이 ‘비단에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금수산(錦繡山)으로 바꿨다.

구름이 머문다는 뜻을 가진 건물, 유운당(留雲堂)의 걸린 시(詩)는 ‘선수는 절경을 소문내지 않는다’는 말이 옛날에도 통용됐음을 보여준다. ‘산중에는 무엇이 있을까(山中何所有), 산마루 흰 구름 많이 머물러 있구나(嶺上多白雲), 다만 나 홀로 즐길 뿐(只可自怡悅), 그대에게까지 바칠 수가 없구나(不堪持寄君)’ 주법당인 원통보전에는 ‘有求必應(유구필응:원하는 게 있다면 반드시 응답하리라)’이라 쓴 편액이 걸려있다.

▶산과 호수가 빚는 변화무쌍한 매력 = 태양-하늘-청풍호-금수산의 조화는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여름날 아침이면 청풍호의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태양이 작렬하면 수증기가 맥을 못추면서 이 일대 ‘금수강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투쟁하는날 생산된 구름은 의상대를 넘지 못한 채 정방사 아래 쉬어가며 동양화를 그려내고, 비가오는 날엔 회색-초록의 채도대비가 여행자 감성을 자극한다. 비 오는 날 산중 초목이 뿜어내는 희뿌연 날숨, 빗물 떨어지는 처마밑 ‘비움’의 정서가 덧붙여진다.

정방사에서 북쪽으로 35㎞쯤 가면 만나는 의림지 호변 소나무 산책길 역시 비오는 날 걷기 좋은 곳이다. 차창밖 풍경도 여행이요, 낯선 마을 토박이와의 주먹다짐도 여행이라고 했다. 자유의 상징인 여행은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더 풍부해진다. 금수산 정방사와 능강계곡길은 장마철 운치가 돋보이는 곳이다. ‘울고 넘는’ 박달재 자연휴양림, 신유박해 때 크리스찬의 은거지 배론성지도 제천에 있는데, 비가 오나 햇살이 따사로우나 색다른 힐링을 선사한다.

▶비둘기 둥지 닮은 은밀한 폭포 =경기도 포천의 비둘기낭 폭포도 여행 ‘선수’들이 감추고 싶은 곳이고, 세우(細雨)중 트레킹의 매력이 남 다른 곳이다. 비가 내리면 비둘기낭폭포 소리가 더욱 힘차다. 한탄ㆍ임진강지질공원에서 보기 드문 이 폭포는 영북면 비둘기낭 정보화마을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당도할 정도로, 여행자에게 힘든 산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숲길을 걷다가 절벽 아래로 내려서면 폭포가 불현듯 나타난다.

비둘기들이 폭포 협곡의 하식 동굴과 수직 절벽에 서식했다는 얘기도 있고, 동굴 지형이 비둘기 둥지처럼 움푹 들어간 주머니 모양이어서 이렇게 이름지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평지에서 멀지 않은 ‘은밀한 곳’이기에 전쟁 중 주민 대피 시설 혹은 군인들의 휴양지가 됐다. 드라마 ‘추노’, ‘선덕여왕’ 등이 이곳에서 촬영되고 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둘기낭폭포로부터 뻗어난 현무암 협곡은 30m높이 주상절리의 호위를 받으며 400m가량 이어진다. 지질공원으로 연결되는 교동가마소, 지장산계곡 역시 독특한 현무암 지형속에 물소리의 제잘거림이 청량한 곳이다. 인근엔 교동장독대마을 농촌 체험, 국립수목원, 평강식물원, 허브아일랜드 식물체험이 기다린다.

▶데칼코마니 제작소 ‘숲으로 다리’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하리에 있는 붕어섬에서 산아래로 3.3㎞ 연결된 ‘숲으로 다리’는 북한강 강물위에 설치된 나무 부교이기에 물 위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부터 1㎞ 가량 그윽한 숲길로 들어가게 되니, 리얼리즘 소설가 김훈이 ‘칼의 노래’를 통해 이렇게 이름 지었다.

새벽녘엔 물안개로 장관을 이루고, 청명한 날엔 반영이 일품이며, 비오는 날엔 회색과 섞인 숲의 초록과 강물의 청색이 은은한 정취를 자아낸다. ‘숲으로다리’로 가는 자전거를 빌리는 붕어섬은 수상스포츠의 메카이다.

화천과 춘천의 경계쯤 자리한 서오지리는 수몰지구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심은 연꽃으로 매년 여름 반전매력을 선사한다. 15만 ㎡에 이르는 연꽃단지의 장관은 물론 연아이스크림과 연잎차, 연꽃차, 연잎밥 등 건강한 먹거리도 갖췄다.


▶구름과 가랑비를 만나야 제 맛 =전남 진도의 운림(雲林)산방 역시 구름과 가랑비가 어우러져야 제 맛이다. 진도 동쪽 첨찰산 자락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 허련 화가가 말년에 살았던 집이다.

허련은 당쟁에 휘말린 추사가 유배를 거듭하다 세상을 뜨자, 고향 진도로 돌아와 첨찰산 쌍계사 옆에 소박한 집을 짓고 죽을 때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운림산방에서 쌍계사 상록수림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허련의 산책로였다. 진도에서 진돗개 공연, 테마파크 체험은 기본이다.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안동 농암종택은 비가 오는 날 가면 금상첨화이다. 구름이 내려앉은 청량산 줄기가 수묵화를 그려내고, 불어난 낙동강의 흐름은 더욱 장쾌하다.

농암종택에 장마철이 오면, 풍년을 재촉하는 빗소리, 강물 소리, 새소리 3중주에 빠진다. 촉촉하게 젖은 낙동강변을 따라 퇴계오솔길(예던길)을 걷고, 퇴계의 14세손 이육사의 생애와 문학 관련 자료를 전시한 이육사문학관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그려보자.

7월에도 일이 쏟아져 여행갈 엄두를 못내고 있는데, 주말에 비까지 내린다. 이런 때, 서울 샐러리맨들에게는 창덕궁 후원과 수성동 계곡이 제격이다. 수성동계곡에서 서촌일대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윤동주 하숙집 터와 공방, 맛집 등이 즐비하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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