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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눈물방울의 길
주변에서 흔히 두 부류의 사람들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직업이 없어서 힘든 사람들과 직업 때문에 힘든 사람들. 전자는 직업을 가지기만 하면 경제적인 문제와 삶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여긴다. 후자는 반복되는 과중한 일과 실적 그리고 인간간의 갈등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일이 없어서 혹은 일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며칠 전 출판업에 종사하는 지인 S를 만났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10년은 족히 젊어진 듯 했고 눈은 생기를 발하고 있었다. 마치 지친 태양이 바닷물 속에 잠겼다가 아침에 햇귀를 발하며 싱싱하게 솟아오른 느낌이었다. 과거에는 남편 곁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는데, 자신의 생각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크게 달라진 점이었다. 남편이 나가고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실 때쯤, 변화의 비밀을 물어보았다. S는 웃으면서, 결혼한 딸이 자신에게 물어본 이 한마디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는 꿈이 뭐예요?”

S는 무심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이지.” 딸은 “그것은 엄마의 일이잖아요. 엄마의 꿈이 뭐예요?”라고 다시 물어왔다. 대답을 찾으려하자 천천히 가슴 속에 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 마음에 품었던 ‘눈물방울의 길’을 가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S가 눈물방울의 길이라고 하는 곳은 ‘눈물의 길(Trail of Tears)’로 알려진 곳이다. “1830년 미국에서 제정된 ‘인디언 이주법’에 의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은 미국 남동부의 고향 지역을 떠나 인디언 구역으로 지정된 미시시피 강 서부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눈물의 길’이라는 말은 1831년 촉토족(무스코기 어족의 인디언 부족)의 강제 이주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유래되었는데”, S는 이주 과정에 질병과 고통으로 죽어간 수많은 인디언들이 떨어뜨린 눈물방울처럼 뚝뚝 무덤을 남겨놓고 지나 가야했던 길이라고 설명했다. S는 인디언들이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 어떻게 영혼과 정체성을 지켜나갔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던 꿈을 상기해내게 되었다고 한다.

S는 ‘눈물방울의 길’을 떠올리고부터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당장 ‘눈물방울의 길’을 따라 떠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충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한데 몸 안에서는 말라 죽다시피 한 세포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신에 대한 기대는 물론 주변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집 앞의 작은 가게 하나도 누군가의 꿈일 수 있어서 세상의 모든 것이 귀하게 보인다고 했다. 필자는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가진 이유를 물어보았다. S는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인디언의 강한 정신이 우리 민족과 닮은 데가 있다고 여겼고, 그들이 생명을 지키는 방법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전수받은 문화와 지혜였다는 사실이 강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고 대답했다. 빛을 발하는 S의 얼굴의 보며, 문득 일을 꿈과 혼동하거나 일을 찾을 뿐 꿈을 찾지 않아서 때로 길을 잃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S가 그렇게 달라 보였던 이유가 분명해졌다. 눈물방울의 길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지혜를 찾아보려는 강한 사유가 S의 가슴 속에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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