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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그란 안경, 담배 파이프…이 남자, 사진으로 말하다
앙드레 케르테츠 작품 189점 성곡미술관서 기획전

동그란 안경과 담배 파이프, 재떨이가 테이블에 놓였다. 단순한 정물사진인데 단순하지가 않다. 오각형으로 잘린 테이블은 삼각형이 어두운 공간과 대비를 이루며 안정적인 구조를 보인다. 동그란 안경과 동그란 재떨이는 원의 형태를 리듬감있게 표현했다. 직선 파이프는 전체적 구도에 긴장감을 더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앵글은 오브제의 그림자를 강조해, 이미지를 중첩시킨다. 게다가 이 안경과 파이프는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것이다. 몬드리안이 없는데도 몬드리안의 존재가 느껴지는 ‘이상한’ 사진이다.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사진가로 꼽히는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가 동향의 화가 라요스 티하니의 ‘파이프가 있는 정물화(1923)’에서 영감을 받아 촬영한 작품이다.

앙드레 케르테츠의 사진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은 헝가리 출신의 사진작가 케르테츠가 일생에 거쳐 작업한 작품 189점을 여름 기획전으로 선보인다. 사진기가 발명된 초창기인 20세기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 자신의 언어로 구축한 작가의 작업이 일대기로 정리됐다. 


전시는 케르테츠가 활동한 70여년간을 시간순으로 따라간다. 다만 주로 활동했던 장소를 기준으로 헝가리 시기(1912-1935), 파리 시기(1925-1936), 뉴욕시기(1936-1985)로 나누어 선보인다. 카메라를 처음 접했던 헝가리 시기엔 일기를 쓰듯 잔원의 목가적 생활과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촬영했다. 남동생 예뇌와 가족들, 친구들이 모델로 등장한다. 1차 세계대전의 풍경도 등장하는데 전쟁의 참혹함이나 전투장면이 아닌 군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케르테츠 특유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영상언어가 살아있다.

파리시기는 작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다. 1925년 현대미술의 본거지인 파리 몽파르나스에 자리잡은 케르테츠는 만 레이, 몬드리안, 브랑쿠시, 샤갈, 콜레트, 짜라 등 다양한 예술가와 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완성시켜나갔다. 특히 1933년엔 여성의 누드를 뒤틀리게 표현한 ‘왜곡(Distortion)’시리즈를 발표해 사진적 아방가르드의 주역이 된다. 파리시기 작품들은 예술적 성취도 뛰어나지만 파리에 대한 작가의 애정도 듬뿍 묻어난다. 가을의 햇살이 길게 늘어진 계단이나,앙상한 나무와 가로등만 남은 겨울의 공원풍경은 애잔하고 따뜻해 나름의 멋이 느껴진다.

이후 유태인인 케르테츠는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고, 이때가 뉴욕시기다. 파리와 달리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몰이해와 외국인으로서의 장벽으로 우울증까지 앓는다. 찬란했던 파리시기와 비교해 보는 것도 전시의 묘미다.

‘포토 저널리즘’을 소개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우리가 해 온 것들이 모두 그가 처음으로 했던 것”이라는 말로 칭송했던 케르테츠의 전시는 9월 3일까지 성곡미술관 전관에서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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