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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연의 외교탐구] 도발하는 日, 당하는 韓
-日 외무성 “유엔총장, 일본군 위안부 환영 취지 전해”
-직접인용 아닌 간접인용 사용
-프레임에 능한 日, 북핵 담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별도의 논평을 통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한일 위안부 합의 지지’ 발언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유엔 수장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둘러싸고 일본 측 입장에 손을 들어줬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사진설명=헤럴드경제가 입수한 아베 총리-구테흐스 사무총장 대담 보도자료에서 한일 위안부 문제가 언급된 구절]

▶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일본 측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일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헤럴드경제가 확인한 결과, 일본 외무성은 구테헤스 사무총장의 발언을 직접인용하지 않고 외무성의 해석을 곁들여 간접인용을 했다.외무성 보도자료 578자 중 위안부 관련 내용은 74자로, 한 문장에 불과하다. 문장은 “또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와 관련, 그 실행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에 대해 구헤트스 사무총장은 찬의를 표명함과 함께 환영하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유엔에서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와의 회동에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해결돼야 하는 사안이라는 데 동의했다”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위안부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위안부 해법의 본질(nature)과 내용을 규정하는 것은 양국에 달려 있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원론적인 논의를 한 것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위안부합의 지지발언에 대한 유엔 해명자료 [사진=유엔 홈페이지]

▶ 북핵에서 ‘위안부 합의’로 촉발된 아베-구테흐스 대담…프레이밍에 능한 일본= 일본의 강점은 언론 등을 이용해 이슈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정한다는 데에 있다. 당장 위안부 합의만 보더라도 일본은 ‘국가간 합의’인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한국이 국민정서를 이유로 깨버리는 것처럼 이슈화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거듭 ‘합의이행의 중요성’을 국제 정상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장 자유무역의 미래, 테러이슈, 국경강화, 안보부담 등 현안이 산적한 각국 정상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리 만무하다. 아베가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찬의’(贊意)를 이끌어낸 것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복잡한 내막을 ‘국가간 합의이행의 중요성’이라는 성격의 문제로 단순화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베 총리와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대담이 위안부 합의에 대한 ‘논의의 장’으로 비쳐진 것은 일본 언론보도가 나오면서부터였다. 일본 매체들이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위안부 합의에 ‘찬의’(贊意)와 ‘환영‘(歡迎)을 표명했다”고 보도한 것을 ‘지지와 환영’(support and welcome)으로 번역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일본 언론은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제를 극대화시켜 마치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일본 측에 손을 들어준 듯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의 본질적인 문제는 ‘군의 관여 하에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가 생겼고’, ‘아베 내각 총리대신이 일본국 총리로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데에 있다. 내각총리제로 운영되는 일본 정부구조를 고려했을 때 일본 문부과학성이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은 순간부터 위안부 합의는 깨진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일본에 ‘합의를 어긴 것은 오히려 일본이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G7 정상회의 공동성명문에서 기술된 북핵ㆍ미사일 관련 입장 [사진=미국 국무부]

▶ ‘나무’ 부각시켜 ‘숲’ 못보게 하는 日…북핵담론 주도권은 어디로= 사실 아베 총리와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대담에서 점은 따로 있다. 바로 북핵ㆍ미사일 도발에 대한 담론이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아베 총리과 구테흐스 사무총장는 북한 정세와 관련, 지금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중국의 역할을 견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일치했다. 특히, 사무총장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을 유엔 안보리는 가지고 있으므로, 향후 관계국들과도 북한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자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G7 공동선언문에 언급된 북핵문제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해보면 ‘대화’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 6 페이지 짜리 G7 공동선언문 중 2 페이지에는 G7 정상들이 “북한 핵ㆍ미사일 도발을 가장 강한 용어로 규탄하고 제재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라고 기술돼 있다. 이어 납치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촉구했다. 모두 일본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지금은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닌 압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한미일의 역할도 중요하다. 북한의 위협을 제저하기 위해 미일은 방위체제와 능력 향상을 도모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자는 데 의견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일본은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 데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친북’ 성향의 인물이며, 북핵ㆍ미사일 개발의 악순환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지난 2012년과 2014년, 그리고 2016년 북한과 수차례 비공개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외외교적 필요에 따라서는 북한과 대화에 나섰다. 

[사진=게티이미지]

▶ ‘결기’ 아닌 ‘지혜’ 필요한 시대…日 도발에 휘말리지 말아야= 앞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4대 원칙을 발표했다. 양국은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궁극적 목표이고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북한과는 올바른 여건이 이뤄지면 대화가 가능하고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감하고 실용적인 공동방안을 모색한다는 데 합의했다.

우리가 이처럼 남북 간 대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북핵ㆍ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주도권을 잡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일 동맹 구도에 따라 압박만 강화할 경우, 북한은 압박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의 대화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북핵ㆍ미사일 이슈에서 한국이 당사국으로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접촉면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인식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개성공단 폐지 당시 반대의견이 있었던 것은 그만큼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차단되기 때문이다”며 “압박기조를 유지하더라도 사회ㆍ문화적인 측면에서는 교류의 고리를 남겨둬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북핵 담론에서의 발언권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외교안보 전문가는 “한일문제를 다룰 때 역사ㆍ영토 이슈에 함몰된 나머지 현안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한일 간 외교전은 역사 이슈에만 국한돼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역사문제를 이슈화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보게 되는지 관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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