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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립군' 여진구 "누나들이 '진구어빠'라고 불러주면 좋아요"
-‘대립군’ 광해는 ‘각성하는 금수저’의 모습이 담겨있다.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광해를 다룬 사극은 많았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도 있고, 드라마 ‘화정’도 있다. 하지만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대립군’에서 여진구(20)가 연기한 광해는 조금 각별하다. 조정을 나눈 분조(分朝)를 이끌어가는 책임자로서의 리더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분조를 입체적으로 부각한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왕인 선조는 도망갈 궁리부터 한다.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의주까지 갔다. 이를 ‘파천’이라고 부르지만, 쉽게 말하면 죽지 않으려고 도망간 거다. 백성이 사는 도성을 버리고 중국 국경선까지 갔으니 국가를 통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열여덟 살 광해에게 조정을 나눠주었다. 아들에게 권한을 주고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선조는 아들의 험난한 분조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기도 했다.

이런 전시 상황에서 광해는 몇몇 신하와 남의 군역을 대신하며 먹고사는, 오늘날로 따지면 비정규직 같은 대립군(代立軍)을 데리고 분조를 이끈다.

“역사공부를 많이 하게 됐어요. 광해는 왕세자였을 때 전쟁중에도 책을 읽는 사람이에요. 왕세자때 전쟁을 겪으면서 전쟁만큼은 일어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겠죠.”





‘대립군’에서 광해는 ‘각성하는 금수저’의 모습이 담겨있다. 백성과 함께 하고, 백성에게 좀 더 가까이 가려고 한다. 대립군의 수장 토우(이정재)가 그의 가마를 부숴버려도 괜찮다고 하고, 이들과 길에서 비를 맞으며 밤을 지샌다.

“100% 역사를 그대로 담지는 않았지만 극중 광해는 사실상 임금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백성을 신경쓰는, 백성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지금까지 펼친 연기와는 결이 다른 연기를 했어요. 그래서 더 떨립니다.”

백성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왕은 언뜻 나약한 리더의 모습을 보이는 듯하지만, 좋은 리더의 시작점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감히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왕이 나올 수 없다.

“광해는 왕세자 옷을 당장이라도 벗어던지고 싶지만, 백성들도 자신을 버리게 될 것을 우려한 것이죠. 동료를 아낄 줄 알고 인품이 타고났어요. 대신에게 칼을 겨누면서 ‘나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건 광해의 성장이죠. 초반에 무기력하고, 못나보이는 모습을 잘 살려야 후반의 그런 모습이 잘 어필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어 여진구는 “광해는 자기가 힘든 것보다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걸 못견디는 성격이에요.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감정도 그런 거겠죠”라면서 “시선이 살짝 바뀌어, 감정 변화를 맞이하는 포인트가 있는데, 격한 것보다 내면으로 두꺼워지는 잔잔한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광해는 줏대가 없는 리더다. 때로는 주위 분위기에 휘둘린다. 자신도 못믿는 사람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자신이 주가 돼 서술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광해도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이번 영화에는 누구 하나도 자아가 강한 사람이 없어요. 허깨비 같은 인생들이 모여 상황에 의해서 변화하는 것이고, 그 느낌을 살리려고 했어요.”

이제 20살이 된 여진구. 참 말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해의 캐릭터 분석을 이토록 정교하게 하다니. 이정재는 여진구를 후배라고 생각하지 않고 동료로 생각한다고 했다. 드라마 ‘자이언트’와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등으로 이미 아역 시절부터 자신의 연기관이 있는 배우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기는 옛날이 낫더군요. 생각 없이 잘 하더라고요.‘ 연기 할 거지’, 이게 아니에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이제 그게 아니라 잘 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진구는 “지금 (그런 역을)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이었어요”라면서 “지금은 그때보다 욕심이 많아 그렇게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그 시절이 있다는 게 좋아요, 작품 운도 있었던 거죠. 제게 어울리는 역할이 시기에 맞게 찾아줘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라면서 “누나들이 애칭 같은 느낌이 드는 ‘진구어빠’(어린 오빠라는 뜻)라고 불러줄 때마다 편안하게 느껴져요. 근데 점점 진짜 오빠가 돼가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립군’은 올로케이션 영화다. 대한민국의 빼어난 산수가 자주 등장한다. 산악 로드무비다. 한국 자연을 간접 홍보하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영화에 조금 관심을 가질만도 하다.

“등산이 힘들었지만, 괜찮았어요. 연기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큰 도움을 받았어요. 화장실이 문제였는데, 자연스럽게 많이 안먹게 되고, 점점 피폐해져 가니 리얼리티도 더 살릴 수 있었어요.”

여진구는 궁금증을 못참는다. 의문이 생기면 감독이나 선배 배우에게 물어봐야 한다. 상황이나 캐릭터 감정이 이해가 안되면 연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자와도 베이징에서의 저녁 식사자리에 함께 한 적이 있었는데, 거의 ‘질문돌이’ 수준이었다.

여진구는 “광해는 어릴 때 비참한 전쟁을 겪고 중립외교 같은 외교술을 발휘했어요. 간절함과 백성을 위한 길을 생각한 것이죠”라고 자신의 ‘리더론’을 설파했다. 그는 영화 ‘1987’(2018년 개봉)에서는 민주화 투사 박종철 역을 맡는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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