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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국가와 정치 뒤에 숨은 폭력성
작년 말 구중궁궐 청와대를 에워쌌던 100만 촛불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되뇌었다. 두꺼운 법전 속에서 선언적 의미에 그쳤던 이 한 문장은 촛불과 탄핵이라는 드라마틱한 역사 현장을 거치면서 실재(實在)적인 문구로 떠올랐다. 이 한 문장은 ‘국가란 무엇인가’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정치란 무엇인가’ 같은 케케묵은 질문을 다시 던졌고, 국민들의 가슴 속에는 피끓는 절망과 분노,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의무감에 불을 지폈다.

5년 전 51.6%라는 믿기지 않는 득표율로 국민의 대표를 자처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정국. ‘세번의 그러나’로 이어지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짧지만 강렬한 주문. 그리고 이어진 60일간의 장미대선 레이스는 5월 10일 ‘OOO 대통령 당선’과 함께 새출발을 맞는다.

공교롭게 새정부가 출범하는 5월 10일은 유권자의 날이기도 하다. 69년 전 이 땅에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라는 최초의 민주적 선거가 치뤄진 날을 기념해 2012년 만들어진 법정 기념일이다. 1948년 5월 10일 치뤄진 5ㆍ10 국회의원 총선거로 제헌의회가 구성되고, 이 제헌의회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되는 헌법을 제정한다.

여기까지는 해피엔딩이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롤러코스터를 탔지만 ‘국민의 승리’로 이어지는 결말이다.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촛불을 들었고,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로 달려갔고, 마침내 새정부가 출범하니 이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끝 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다’(요기 베라).

92일간의 치열한 탄핵심판은 촛불과 태극기가 정면충돌했다. 촛불은 헌법 제1조 2항을 되뇌었고, 태극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가를 외쳤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탄핵 이후 펼쳐진 60일간의 조기대선 레이스는 또 어떤가. 내가 아닌 타인을 ‘적폐’(積弊) 아니면 ‘친북좌파’로 몰아세웠다. ‘주권 구걸’도 모자라 ‘주권 협박’도 일삼았다. 모두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그 전제에는 날카로운 폭력성이 숨어 있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가짜뉴스도, 댓글부대도 조직적ㆍ비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모 대선후보 측 국회의원은 전화통화에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미쳐 날뛰고 있다. 어떻게 이처럼 폭력적일 수 있나”고 하소연 하기도 했다. 실제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모든 것이 선(善)이고, 다른 후보는 모든 것이 악(惡)으로 규정됐다. 152일간 펼쳐진 2막의 한 켠에는 배타와 폭력성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유권자의 날 국민의 선택을 받는 새 대통령은 이 폭력성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정치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인 힘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정치인은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 촛불과 헌법 제1조 2항이 해피앤딩으로 끝나기 위해선 국가와 정치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는 폭령성을 걷어내야 한다. 사족 하나. 그래서 통합정부든 공동정부든 연합정부론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봄직한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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