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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보다 청보리”…섬은 그렇게 푸른 물결로 일렁였다
-‘잊을 권리’ ‘놓을 용기’ 주는 5월의 제주
인심·자연·건강식…유배 와서 長壽하는 곳
짜장면 배달 CF 마라도엔 짜장면집 들어서
송당마을 삼나무길-영실 철쭉 보면서 힐링

제주는 정치적으로 유배 당한 사람이 장수(長壽)하던 곳이다. 자연이 준 선물과 인심은 유배를 보낸 간신배의 독(毒)을 제거하고도 남았다.

추사 김정희는 선비정신을 지키다 세도가와 척을 진 끝에 제주 대정에 유배됐다. 그는 가파도, 송악산, 산방산, 용머리해안, 안덕계곡 등 제주 남서쪽에 터 잡아 유람하고 인심 좋은 제주 주민과 어울려 ‘조냥’ 음식을 먹으며 힐링했다. 당시 평균수명 보다 20년이나 많은 71세까지 살았다.

당파싸움 속에 극도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제주에 유배됐던 우암 송시열은 오래지 않아 한양으로 재소환됐지만 넉달 간의 제주 힐링 덕분인지 87세까지 살았다.


상처를 잊고, 권력과 물욕을 내려놓았기에. ‘파라다이스’ 제주에 유배된 연후에야 살 맛을 느낀 선비들은 “내가 이러려고 그랬나”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바른 소리, 더 일찍, 더 많이, 더 당차게 할 걸…” 제주 힐링 후 정의(正義)도 되새겼으리라.

대정읍 마라도를 자식 처럼 호위하는 가파도에 가면 물욕이 사라진다. 이어도(여도, 여섬)와 이어도 오빠 마라도, 마라도를 엄호하는 가파도, 제주도 대정읍의 세 섬은 우리 국토의 최남단을 당차게 지킨다.덮개로 바다를 덮어놓은 듯 하다고해서 개도(蓋島)라 불릴 정도로 최고 해발 20m. 포구를 제외하곤 들녘이다. 꽃 보다 청보리. 이곳은 5월 푸른 청보리가 여행자의 가슴을 온통 푸르게 물들인다.

파도는 바다에만 치는 게 아니다. 어부의 쉼터가 있는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뱃길로 20여분이면 도착하는 가파도는 해마다 봄이 되면 60만㎡에 달하는 넓은 청보리밭이 푸른 물결로 춤 춘다.

낭만과 ‘썸’의 코드로 연서에 곧잘 등장하는 청보리는 저 흔들리는 동안 여행자의 마음을 흔든다. 청보리밭 사잇길로 걷는 어느 기업 MT 팀원 일행들의 힐링된 표정 역시 아름답다. 가파도 청보리는 칼슘ㆍ인ㆍ철분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B가 풍부해 각기병, 변비, 당뇨, 대장암 예방, 다이어트에도 좋다. 제주의 자연은 마음과 몸을 모두 챙기는 재주를 가졌다.

가오리(제주 방언 ‘가파리’) 처럼 생긴 섬의 해안선 4.2㎞에 올레길이 나 있고, 섬 가운데를 관통하는 길 좌우로 드넓은 청보리밭이 흉금을 상쾌하게 한다. 관통로의 한 가운데 두 개의 풍력발전기가 청보리를 엄호하고, 길의 끝지점에 상동과 하동 등 어촌이 형성돼 있다.

해안선 올레길 10-1코스는 바다와 함께 돌며 모녀 간, 부자 간, 친구 간, 직장 선후배간 자못 무거운 얘기일지라도 편안하게 털어 놓기에 좋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마구 웃기에도 좋다.

북쪽 물 건너엔 제주 본도의 산방산과 드라마 ‘올인’ 촬영지인 송악산 해식애가 겹쳐서 보이고, 가파도 올레길, 청보리밭 길섶 곳곳에는 유채꽃이 ‘밭담’ 처럼 피어있어 초록빛 청보리와 예쁘장한 하모니를 이룬다. 물욕을 잊게 하는 힐링의 기운이 온 심신을 감싸기에 이곳에서 빌린 돈은 ‘가파도(갚아도) 그만, 마라도(말아도) 그만’이라 한다. ‘잊을 권리’, ‘놓을 용기’도 돋게 하는 곳이다. ‘춘자네집’ 붉은 해삼(홍삼) 안주에 막걸리 한잔 하면 화룡점정이겠다.

모슬포항에서 가파도 온 만큼 더 남쪽으로 가면 마라도에 닿는다. 해양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 섬은 가파도의 딸이다. 학사천의 물이 마르면 횃불을 올려 어머니 같은 가파도에 도움을 청한다. 몇 가구 살지 않지만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CF때문에 짜장면집이 생겼다.

가파도에서 다시 모슬포항으로 나와 산방산까지 남동→북동으로 시계 반대방향의 해안선을 따라가면 운진항→송악산 일대, 일제 지하벙커→드라마 ‘올인’ 촬영지를 거쳐 산방산 바로 앞 용머리 지질트레일 산책로에 다다른다. 지하벙커의 규모는 오키나와의 2배에 달한다. 80년이 지난 지금 이 흔적은 우리의 문화재일 뿐이다.

산방산 용머리 지질트레일 A코스는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등재됐다. 80만년 지구의 시간을 품은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에선 지질운동의 오묘함을, 사계리, 화순리, 덕수리 등 주변마을엔선 문화의 향연을 체험할 수 있다.

용머리해안에서 사계포구를 거쳐 형제해안로, 대정향교, 산방산을 거쳐 다시 용머리해안으로 돌아오는 13㎞의 코스는 곳곳에 피어난 봄꽃으로 치장돼 있다. 갈색 모래와 검은색 모래가 섞여 있고 단단히 굳은 모래바위 사이에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설쿰바당은 이채롭다.

제주의 5월 여행키워드에서 ▷곧게 뻗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숲과 오솔길의 낭만이 아름다운 송당마을 삼나무길 ▷분홍 시크릿 가든으로 불리는 한라산 영실코스 철쭉 ▷순백의 여신, 귤꽃 ▷노란빛의 새우란이 아름다운 절물자연휴양림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서쪽의 중문이 많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병풍같이 펼쳐진 대포동 6각 주상절리대를 봐야 제주에 온 것 같다. 제주도 여행자의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생태 여행에서 잠시 벗어나 서귀포 시내 소(牛)의 화가 이중섭 거리를 다녀보다는 것도 색다른 매력을 줄 것이다.

서귀포시청 1청사에서 조금더 서쪽으로 가서 제주대 연수원 앞바다에 있는 ‘소천지’는 백두산 천지를 바다에 옮겨놓은 것 처럼 바닷가에 기암괴석이 둘러쳐진 곳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베테랑 사진작가들의 은밀한 출사지이다.

제주에 개발사업이 많아지면서 북동쪽에만 미개발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서쪽에도 자연 그래로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렌터카의 핸들을 돌려 서쪽으로 향하면 제주 바다 자연미를 잘 간직한 곳이 있는데, 협재해변과 비양도가 대표적이다. 협재해변과 비양도 사이의 에메럴드 빛 바다와 파도는 사이사이 마주한 검은색 바위들과 썸을 탄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늘 새로운 컬러를 그려내는 8색조의 협재-비양 5월 바다이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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