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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신체까지 가격 매기는‘기괴한 경제학’
장기적출 1000弗 vs 1조2000억弗
실험 통해 삭막한 경제학 비판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경제적 인간
학습·제도의 산물임을 지적
인간의 얼굴한 경제학 역설


美 오번 대학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후의 장기 적출 댓가비’에 대한 연구결과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연구자들은 이들에게 사후 장기 적출을 허용하는 계약서에 사인하려면 얼마를 받겠는가는 설문를 돌렸다. 학생들은 먼 훗날 자신의 신체를 넘겨주는 대신 당장 수중에 돈이 생긴다는 이야기에 솔깃했다. 공급곡선은 인센티브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 기증자 한 명당 1000달러면 충분한 가격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콩팥 둘, 간 하나, 창자, 췌장, 각막 한 쌍, 물렁뼈, 여러 신체기관과 조직을 내주는데 1000달러면 과연 적정한 가격일까?

똑같은 실험을 좀 더 높은 연령대의 더 폭넓은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청산 가치는 자그마치 1조2000억 달러가 나왔다. 한 마디로 신체의 대가로 얼마를 받을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의사 표시다.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와 윤리를 숫자를 통해 표명한 것이다. 현실에서 장기매매는 불법이지만 암 시장은 형성돼 있다. 이를 양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장기에 일단 가격이 붙었으니 시체에 어떻게 가격을 매길 지의 기술적인 문제로 넘어간 것이다.


필립 로스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류스대 교수는 ‘차가운 계산기’(열린책들)에서 실험실의 모종의 계산이 현실화되는 경제학의 속성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일단 가격을 매기고 나면 현실에 등가물이 생기는 현상이다. 흔히 경제학을 어떤 상황 속에서 비용 대비 가장 높은 효용을 안겨주는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으로 알고 있지만 로스코에 따르면, 근거가 불분명한 계산에 기초해 전에 없던 ‘새로운 사실들’을 만들어내는 기괴한 학문이다.

‘말(가격)이 곧 실재’가 되는 경제학의 이런 속성은 최근에는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고 여겨져온 대상들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도덕적 문제들을 어떻게든 기술적 시물레이션으로 환원하려 하는 움직임이 그것. 값이 매겨지고 경제적 거래가 성사되면 인간적 유대라는 관계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된다.

로스코는 이 책에서 실험실에서 탈출한 경제학이 우리를 얼마나 삭막하게 만들고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지 문학적 비유와 폭넓은 실증연구, 경험을 통해 들려준다.

희소한 자원 속에서 합리적 선택을 하는 주체를 이르는 ‘경제적 인간’이란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인간형이다. 비용과 수익을 저울질해 유리한 쪽으로 행동하는 이기적 인간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로스코는 이런 특성이 학습과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가령 경제학과와 비경제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임승차 연구에 따르면, 경제학과 학생일수록 집단적으로만 향유할 수 있는 공공재에 돈을 내는데 인색하다. 또 같은 경제학과 학생이라도 게임이론을 배운 학생이 자기 이익에 더 충실한 성향을 보인다. ‘자기 이익모델’이라는 소리를 자꾸 듣다 보면 실제로도 자기 이익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정도가 증가한다는 얘기다.

로스코는 이런 경제적 인간은 개인 차원의 학습을 넘어 사회 제도의 변화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소유권과 수익을 행동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놓는 행정시스템으로 바꾸기만 해도 자기 이익에 충실한 인간형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한 예로, 1980년대 노르웨이 정부는 대구 어장이 남획으로 붕괴되자 쿼터제를 시행했다. 어부 한 사람 당 포획할 수 있는 어류의 양을 제한하고 등록된 어부에게만 어업권을 준 것이다. 쿼터제가 도입되자 어부의 역할과 임무는 완전히 변했다. 물고기를 잡을 권리가 소유권이 되자 이걸 좋은 값에 쳐 주는 다른 어부에게 처분하고 편하게 집에서 쉬면 될 것을 뭐하러 고기 잡으러 나가느냐는 이들이 늘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게 결국 어부의 종말을 가져온 것이다.

로스코는 경제학이 가져온 황무지를 바꿀 대안으로 새로운 경제학을 제시한다. 비용 대비 편익으로 결정을 내리는 학문이 아니라 민주적인 경제학이다.

그가 모델로 삼은 것은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앨빈 로스. 짝짓기 이론으로 유명한 로스는 장기 이식을 해야 하는 환자와 이식을 해주고 싶지만 환자와 장기가 맞지 않아 주지 못하는 가족 등을 서로 연결하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 장기이식 연결방법은 신체와 자본의 교환이 가능하다는 생각, 장기매매의 확산에 경종을 울린다.

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이타적 행위라는 고귀함을 오염시키지 않고 특정한 패턴의 교환을 가능케한 것이다.

로스코는 경제학은 이제 무소불위의 위치에서 내려와 한 공동체가 민주적인 선택을 하는데 공학적인 기능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비용 대비 편익이란 잣대 대신 너그럽고 베풀며 함께 웃는, 그래서 더 부유해지는 삶에 봉사하는 경제학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 책은 커다란 질문 앞에 당신을 우뚝 세운다. 당신이 살고 싶은 세상은 정말로 어떤 세상인가?”란 사유를 촉발시키는데 탁월한 저술이라고 평가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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