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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장실 이용 평생 1년7개월…‘응강’ 한번 들어볼까
기존의 철학공부는 가라!
철학자의 화장실 이미지화,
난해한 개념 쉽고 재미있게 풀이
형사콜롬보와 닮은꼴 소크라테스,
요다를 연상시키는 플라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사람은 평생 1년7개월반을 화장실에서 보낸다는 통계가 있다. 그 중 변기 위에 앉아 있는 시간만 92일. 일상의 해방구랄 수 있는 그 곳에서의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철학자가 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카스 N.P.에거와 작가 애덤 플레처는 하루 10~20분 안에 철학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응강’(‘응가’ ‘강의’의 합성어)을 마련했다.

콘라트 클레버란 교수를 내세운 응강은 모두 95개. 이는 반드시 화장실에서 읽어야 제맛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비트겐슈타인 등 철학사의 주요 인물과 주요 개념을 화장실의 이미지로 설명해나가기 때문이다. 


가령, 소크라테스의 화장실(응강6)을 들여다보자. 소크라테스의 화장실 안에는 다른 인물과 차별화되는 물건이 있다. 변기 옆에 놓인 지팡이다. 소크라테스는 산책을 나갈 때 지팡이를 자주 들고 나갔다. 독배도 놓여 있다. 세면대 높이는 아동용 수준. 땅딸막한 체구임을 보여준다. 돌덩이도 놓여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기 전, 그는 석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닮은 꼴 포스터도 한 장 붙어있는데 다름아닌 형사 콜롬보 포스터다. 질문하기라면 콜롬보나 소크라테스나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들이다. 특히 소크라테스식 반어법은 논리 싸움이나 상대방을 몰아갈 때 비밀병기라 할 만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짧게 요약한 다음, “그러니까 네 말은 결국 이 문제를 풀 해결책이 A라는 거지?”라고 묻는다. 상대방이 뭐라 얘길 하면, 이어 “좋아,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아니, 사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그러니까 넌 정답이 A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정답이 B일 가능성은 0.1%도 없다는 뜻이잖아 그렇지?”식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명언 “내가 아는 것이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와 상통한다. 소크라테스의 교훈은 질문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질문의 다양한 유형을 살핀 뒤, 질문은 새로운 지식 습득을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 현실을 투사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플라톤의 동굴의 이데아론을 ‘동굴 속 TV’ 란 현대적 버전으로 재해석한 응강 12~14도 주목할 만하다.

플라톤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진짜 세상이 따로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세상이라 믿고 있는 불완전한 세상은 진짜 세상의 그림자만 보여주는 동굴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투사한 그림자만 보면서 그게 현실이라 믿고 있고 순수하고 이상적인 진짜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플라톤의 화장실 풍경 중 이색적인 건 레슬링복과 닮은 꼴 요다 포스터. 플라톤이 레슬링 선수였다는 사실, 친구들로부터 현명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요다와 플라톤의 가장 큰 차이는 요다가 깨달음을 얻으라는 의미에서 제자 루크를 동굴 안으로 들여보냈다면, 플라톤은 실재하는 세상을 인식하려면 동굴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에 관한 한 철학자 존 롤스의 이론은 빠질 수 없다.

과연 우리는 편견없는 선택을 할까? 선거에서 유권자들 대부분은 충분히 심사숙고한 후, 공정하게 선거권을 행사했다고 생각한다. 후보자의 공약을 꼼꼼하게 비교한 후에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후보를 뽑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자기한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뽑았다는게 맞다. 도덕심이나 사회정의는 다음 문제다.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는 이런 문제와 관련, 어떻게 하면 정의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를 고민해 ’원초적 입장‘이란 걸 내놓았다. 원초적 입장이란 편견이 전혀 없는 상태다. 스스로 자신이 몇살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등을 몰라야 정의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건데, 이는 가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고대 로마에서는 이웃나라를 정복할 건지를 묻는 투표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경지대의 주민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쾌락이 선’이라는 쾌락주의를 대표하는 에피쿠로스의 화장실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흔히 에피쿠로스는 방탕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오히려 작은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극단적인 것은 자제하라고 가르쳤다. 그의 화장실에서 눈길을 끄는 건 여성인권포스터. 에피쿠로스는 절대적인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소파도 눈길을 끈다. 프로이트학파와 마찬가지로 자기반성과 분석을 좋아했고, 요즘 말로 ’상담치료‘라 불리는 대화법에도 열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수십개의 강의가 훌쩍 넘어간다. 누가 철학을 고리타분하다고 했는가. 위트있는 글, 실용적인 조언과 어록, 영향력 평가와 팬덤까지 다양한 지표들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당장 밥벌이에 도움이 되는 학문 대신 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들은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데 철학의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 철학하기는 패러다임의 전환의 시기에 더 힘을 발휘한다. ‘화장실 철학자’(제3의공간)의 내용은 간결하지만 핵심을 담아내 철학입문서로 그만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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