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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핵인용] 朴, 결국 용인술의 실패
-임기 초반부터 ‘수첩인사’ 논란
-김용준, 윤창중, 문창극 등 인사논란
-유승민, 김종인, 전여옥 등 떠난 사람들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초반부터 ‘수첩인사’, ‘불통 인사’, ‘밀봉 인사’ 등 인사참패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충성하는 자는 버리지 않는다’는 박 대통령식 용인술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초래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에 따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 인사실패로 점철된 4년=2013년 취임 전 인선부터 ‘수첩 인사’ 논란이 일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등 12명의 인사가 각종 비리의혹으로 줄줄이 낙마했다.

같은 해 5월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첫 방미 일정을 소화하던 중 주미 한국 대사관의 파견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물러났다.

[사진=헤럴드경제DB]

역대 가장 ‘이상한’ 인사로 논란이 됐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청문회 때부터 자질논란에 휘말리다가 역사상 두 번째로 국무총리의 해임건의에 의해 경질되는 장관이 됐다.

이후 ‘세월호 참사’로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경질됐다. 정홍원 총리도 세월호 참사 책임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총리 후보로 오른 안대희 대법관과 문창극 중앙일보 주필이 각각 전관예우와 친일발언 논란으로 낙마했다. 이후 이완구가 국무총리에 발탁됐지만 ‘성완종 사태’로 부임 70일 만에 사임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임하자마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돼 논란이 됐다. 문 전 이사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분쟁’ 문제와 관련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개입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지난 4년 박근혜 정권 출범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던 핵심실세들은 권력의 무대에서 초라하게 사라졌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모두 구속기소됐다.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ㆍ홍보수석 비서관 등을 거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대표에서 물러나고 자진 탈당했다. 서청원ㆍ최경환ㆍ윤상현 의원은 새누리당 ‘분열의 주범’으로 몰려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박근혜가 버린 사람들=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용인술은 스스로 적을 만들었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원박’(원조 친박) 유승민 의원은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다”고 말했다가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배신의 정치인을 심판해줘야 한다”며 유 의원을 공격했다. 이후로 유 의원은 이른바 ‘친박’에서 벗어나게 됐다.

김무성 의원도 마찬가지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 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 2007년 대선 경선 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으며 박 대통령 곁을 지켰던 ‘정예 원박’이었다. 하지만 박근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내대표 추대에 응하고 이명박의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면서 박근혜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도 박 대통령의 핵심측근이었다 뒤돌아섰다. 

이혜훈 전 최고위원과 진영 의원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폐기ㆍ수정 반대를 요구하다가 박 대통령과 결별했다.

박근혜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었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이상돈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대선 직후 두 사람이 짜준 대선공약들이 사실상 ‘팽’ 당하면서 박 대통령의 반대편에 선 핵심인물로 거듭났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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