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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차 세계대전 기원은 ‘할힌골 전투’
소련-日관동군 ‘노몬한전투’ 초점
獨, 폴란드 침공 등 연관성 추적
일본군 끔찍한 생체실험도 폭로
사료·기록에 의한 생생한 접근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언제로 볼 것인가는 여러 이견이 있다. 1939년 9월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부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일부 학자들은 1914년부터 1945년까지를 ‘30년 전쟁’으로 한데 엮기도 하고, 1937년 7월7일 일본의 만주사변부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영국의 저명한 전쟁사가 앤터니 비버는 또 다른 입장이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공격하기 석 달 동안 벌어진 ‘할힌골 전투’(Battle of khalkhin Gol), 일명 ‘노몬한 사건’을 결정적으로 본다. 소련과 일본, 독일의 미묘한 관계와 향후 전쟁의 향배에 영향을 미칠 요소가 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 희생당한 사람들이 겪은 비극은 질서가 확립되기를 절실히 바랐던 다수의 비판적 대중이 역사상 가장 무모한 범죄에 크게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분노와 배타성, 오만, 그리고 인종적 우월감이라는 대중의 악한 본능에 호소했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 사건의 발단은 몽골 기병대가 할힌골 강을 건너 노몬한 마을까지 내려와 말에게 풀을 먹이면서 시작됐다. 할힌골 강을 국경선으로 여기고 있던 관동군 소속 만주군은 이들을 강까지 밀어냈고, 몽골군이 다시 반격을 가해 밀고 밀리는 교전이 벌어졌다. 여기에 소련의 붉은 군대가 투입되면서 양상은 전면전으로 바뀌게 된다. 주코프가 지휘하는 소비에트군은 일본 관동군 6만1000여명의 사상자를 내며 일본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긴다. 전투 중에 나치-소비에트 조약이 모스크바에서 체결되고 이 전투가 끝나자마자 독일군은 폴란드 국경에 포진, 유럽전쟁을 알리게 된다.

이 참패로 일본은 대 소련전을 지지하는 북진파가 꼬리를 내리고, 해군이 주도하는 남진파가 세력을 얻게 된다. 이는 일본이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령 동남아시아 식민지 쪽으로 눈을 돌리고 심지어 태평양의 미 해군까지 공격에 나서는 계기로 작용한다. 소련과 접전을 원치 않은 일본은 1941년 4월 독일의 소련 침공 직전, 소비에트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1941년 겨울, 소련 공격을 거부하면서 히틀러의 생사를 건 소련과의 투쟁에 지정학적 전환점을 제공하게 된다.

앤터니 비버가 펴낸 ‘제2차 세계대전’(글항아리)은 12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전쟁을 둘러싼 각국의 미묘한 상황과 참전자들의 얘기, 사건과 참상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모두 50장으로 이뤄진 두툼한 이 책의 특징은 각 전선에서 벌어진 전쟁의 양상을 연대기적으로 전하면서 수많은 기록과 사료, 증언 등을 녹여내 한 편의 소설처럼 구성해낸 데 있다.

특히 극동지역에서 벌어진 중국, 일본, 소련간의 분쟁에 주목한 게 다른 책과의 차별점이다. 또한 유럽과 태평양에서 벌어진 알알라메인, 스탈린그라드, 진주만, 노르망디, 미드웨이 전투와 유보트와의 교전을 생생하고 분명하게 묘사하는 한편 소규모의 핀란드 군이 소련군을 패퇴시킨 게릴라 전투에도 주목한다. 유대인학살과 소련의 숙청 작업도 냉정하게 묘사해냈다.

비버는 전쟁의 참상을 전하되 전적으로 기록으로 남아있는 사실들을 증거로 채택, 담담하게 기술해나간다. 소련 비밀경찰의 수십만명에 달하는 자국민 사살, 일본군이 총검으로 중국여인들을 난자한 얘기, 러시아군인들이 베를린을 함락시킨 후 수많은 여성들을 강간한 얘기 등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가령 동프로이센 피란민을 상대로 붉은군대가 벌인 야만적인 강간 장면은 통신장교 라비체프 중위의 상세한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데, 라비체프는 끝에“지옥과 같았다”고 표현했다.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뤄진 유대인학살에 대해서도 비버는 담담하게 증언을 토대로 기술해 나간다. 비버가 새롭게 폭로한 사실 중 하나는 일본군들이 태평양 지역 점령기간에 지역 주민과 전쟁 포로에게 광범위하게 행한 끔찍한 생체실험이다. 비버는 맥아더 장군이 이 일본 의사들이 동맹국에 상세한 기록을 제공해주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이들을 기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전쟁이 비이성적인 모습을 띠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파리에서 어느 젊은 폴란드 유대인이 독일 대사관공무원을 암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독일은 나치 SA돌격대를 투입, 제정 러시아 시절 유대인 학살 사건의 독일판격인 ‘수정의 밤’사건을 일으킨다. 건물 유리창이 모두 깨진 데서 붙여진 이 사건에서, SA돌격대는 유대교 회당을 불태우고 유대인을 공격, 살해하고 쇼윈도를 모조리 박살냈다.

비버는 전쟁의 불합리함, 극도의 야만성이 모든 사람을 완전히 바꿔버린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지금 와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은 비극적이기는 하나 합리적으로 진행돼 선이 악을 무찌르고 승리한 연속적인 사건들로 보이지만 책의 50개의 각 장이 보여주는 사건들은 앞 뒤가 들어맞지 않고 마치 우연의 연속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비버는 그럼에도 그 안에 희망이 존재하고 만약 사람들이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 프랑스, 영국, 미국이 1930년대에 심상치 않게 군사채비를 강화한 히틀러의 권력을 알아채리고 막았을 수도 있었다는 경고다.

‘제2차 세계대전’은 한국의 식민지 상황의 종결과 분단의 단초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쟁 이야기 이상으로 읽힌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진 대규모의 전쟁을 마치 마리오네트를 조작하듯 능숙하게 전개시키면서 전쟁의 세부를 촘촘히 담아내는 비버의 솜씨가 장인적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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