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인종차별’ 논란 불식
-수상소감서 ‘反트럼프’ 목소리 쏟아져
[헤럴드경제=조민선 기자]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미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반(反) 트럼프’ 구호로 똘똘 뭉쳤다. 유독 백인중심, 인종차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아카데미가 트럼프 대통령 덕(?)에 화합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26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반(反) 이민 정책’ 등 미국의 인종, 종교차별 관련 반대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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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흑인 여배우 비올라 데이비스(사진제공=AP)] |
시상식 진행을 맡은 지미 키멜은 오프닝 멘트에서 “나라가 분열됐다. 미국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고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지난해 아카데미상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올해는 사라졌다. 모두 트럼프 덕분”이라고 꼬집었다.
키멜은 배우 메릴 스트리프를 향해서도 “벌써 스무 번째 오스카 후보로 지목된 ‘과대평가된 배우’가 이 자리에 왔다”는 말로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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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지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트럼프 비판 발언으로 주목받은 할리우드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 (사진제공=AP)] |
앞서 메릴 스트리프가 ‘골든글로브 시상식’ 공로상 수상 소감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발언을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메릴 스트리프가) 과대평가된 배우”라고 맹비난한 것을 빗댄 발언이다.
이날 분장상을 수상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은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다. 모든 이민자에게 이 상을 바친다”는 말로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비판했다.
올해 수상작과 수상자의 면면을 봐도 반트럼프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남우조연상은 영화 ‘문라이트’에서 열연한 흑인 무슬림 배우 마허셜라 알리에게 돌아갔다. 여우조연상은 ‘펜스’에 출연한 흑인 여배우 비올라 데이비스가 받았다. 영화는 청소부로 일하게 된 흑인이 백인사회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동안 백인 중심,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아카데미가 남여조연상 모두 흑인 배우에게 전달한 것은 미국 내 ‘화합’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큰 변화로도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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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 (사진제공=AP)] |
기존 아카데미의 역사를 봤을 때 올해 유독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수상 후보에 오른 것도 미국 내 분위기를 반영한다.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는 영화를 자유로운 표현의 마지막 요새로 그린다. 이 작품이 문화예술계에 가하는 탄압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는 미국 내 인종주의에 대한 편견과 싸우는 영화다. 이민자뿐만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받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그렸다. 영화 ‘라이언’은 최근 미국을 분열로 몰고 간 반이민 정책과 가장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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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제공=AP)] |
이날 시상식 전에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에선 배우들이 파란색 리본을 달고 등장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파란 리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항의, 소송을 제기한 시민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를 지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 ‘러빙’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루스 네가는 빨간색 드레스에 파란 리본을 달고 등장했다. 네가는 “그들(ACLU)은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난 그들을 지지하고 모두가 그래야 한다”며 “그들은 일종의 감시자로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하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 그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 ‘모아나’로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린 마누엘 미란다는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파란리본을 달고 나타났다.
‘문라이트’를 연출해 감독상 후보에 오른 배리 젱킨스 감독은 “원래 파란 리본을 달 계획이었지만 이 리본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진보성향의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도 트럼프를 비판하는 TV광고를 제작해 26일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방송 내내 내보냈다. NYT가 TV광고를 낸 것은 10년 만이다.
WSJ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세계 최고의 옷을 입은 자들의 트럼프 시위장이 됐다”고 전했다. ABC 방송 영화평론가인 피터 트래버스는 “올해가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bonjod@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