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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자살보험금 골든타임 허송한 금감원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 자살재해보험금은 ‘불타는 얼음’, ‘동그란 네모’와 같은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인적 손해의 분류상 자살(고의적 생명절단)과 재해(의외의 사고로 인한 신체손상)는 절대로 한데 묶일 수 없어서다. 세상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자명한 이치다. 그런데 우리 금감원은 지난 23일 자살재해보험금을 다 지급하지 않는다고 생명보험사 빅3에 중징계를 내렸다. 금융위가 원안을 받아들이면 3년간 신사업에 진출하지 못하고 재해사망 보장 상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된다. 본업이 생명보험인 교보는 오너를 대체할 역량의 전문경영인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아래 막판에 전건지급을 선언, 신창재 회장이 가까스로 자리를 지키게 됐다. 삼성과 한화의 CEO는 물러나야 할 참이다.

금감원의 이번 제재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수준이다. 금감원이 소비자의 권익을 지켜주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해낸 것일까. 보험학계 뿐만아니라 보험 가입자들의 상당수가 이 물음에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자살보험금 수령자들은 보험사의 (일본상품을 베끼다 일어난) 해프닝성 약관 작성 오류에 편승해 반사이익을 챙기게 됐다. 재해특약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아서다. 애초 보험금 지급 명분이 크지 않았기에 사법당국의 판결(약관대로 지급, 소멸시한 지난 것은 불인정)은 엇갈렸고 소비자단체의 이렇다할 실력행사가 없었던 게 아닌가.

금감원은 단순 약관 자구 실수에 산더미만한 책임을 물었다. 그렇다면 ‘말이 안되는’ 약관을 걸러내는 게이트키핑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태를 키운 금감원도 응당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무려 15년을 끌어온 이번 사태를 복기해 보면 금감원이 여러 번 바로잡을 기회를 놓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을 자초한 잘못이 여실하다. 자살보험금과 관련한 잘못된 약관은 2001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보험약관은 약관이 적정한지 여부를 금감원이 검사한 후 승인을 해야 효력이 발생했다. 보험업계는 무사통과한 해당 약관의 문제점을 뒤늦게나마 인식하고 여러 차례 수정할 것을 건의했으나, 금감원은 이를 번번히 묵살했다. 게다가 자살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소송이 이어졌고, 금감원에도 많은 민원이 제기됐다. 심지어 2007년에는 대법원이 교보생명에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자살보험금과 관련한 수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금감원은 잘못된 약관이 만들어진 지 9년이 지난 2010년에 가서야 약관을 고쳤다. 약관 개정 당시에도 금감원은 약관만 개정했을 뿐,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와 관련한 의미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사실상 방관한 것이다. 금감원이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2014년, ING생명에 제재를 내리면서부터이다. 자살보험금 관련 상품이 2001년부터 판매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13년이 지나서야 행동에 나선 것이다.

자살보험금 문제는 지난 15년 동안 여러 차례 골든타임이 있었다. 금감원은 이를 그냥 흘려 보냈다. 제재는 금감원의 권한이다. 모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금감원은 제재라는 권한을 행사하기 전에, 과연 그에 합당한 의무를 다했는지 아프게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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