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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난국을 국가개혁의 기회로 삼자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가.

지난주 여러 전공분야의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화두다. 민주주의 이행이 이뤄진지 30년이 돼가는 시점에 벌어진 박근혜 행정부의 실정에 어처구니없어들 하면서 말이다. 크고 작은 우여곡절은 있을지언정 긴 안목에서 보면 그래도 역사는 발전해 나아간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역사의 진보가 그 자체의 내재적 원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하기에 달렸다는 점도 강조됐다. 어떤 난국에서든 역전(逆轉)의 기회는 있는 법인데, 구성원들이 그것을 인지하고 합심하여 발전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서냉전의 막바지에 많은 변수들의 조합에 의해 ‘정책변동의 창(窓)’이 열렸을 때, 그것을 포착하고 돌파해 나감으로써 민족통일을 이뤄낸 독일인들이 저력이 한 예다.

지난달부터 광화문 광장과 전국 각지에서 전개된 ‘촛불시위’는 한국인들이 어느 민주주의 선진국 못지않게 월등한 민주시민이 돼 있음을 보여줬다. 1910년의 ‘3ㆍ1 만세운동’, 1960년의 ‘4ㆍ19 학생의거’, 1987년의 ‘6ㆍ10 민주항쟁’의 맥을 잇는, 자주독립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한국인들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국정운영이 운동정치라는 직접민주주의에 의해 일일이 수행될 수는 없다. 시민의 뜻을 국정에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입헌국가제도들이 필요한 이유다. 이 난국을 국정운영체제의 업그레이드(upgrade) 기회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첫째, 아시아에서도 국민적 신뢰도가 가장 낮은 우리 국회를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이번 난국으로 국정운영의 중심은 국회로 넘어가 있다. 국회를 ‘고무도장’ 찍는 장치쯤으로 여겨온 제왕적 대통령의 핑계를 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이 탄핵정국을 얼마나 슬기롭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국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것이 언제가 되던)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도 가능해질 것이다.

둘째, 정치가 위기일수록 행정관료제의 합리적인 역할 수행이 긴요해진다. 프랑스 제3~4공화국 시대에 국정의 중심에 자리 잡았지만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던 의회정치의 난맥상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행정관료제가 좋은 예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거시경제, 다음달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대외관계, 조류독감을 비롯한 국내 재난관리 등 현안들로 인해 일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과장급 인사까지 포함해 유난히도 행정을 간섭하던 청와대가 일단 손을 멈춘 상태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과반수 투표로 탄핵될 수 있는 국무총리가 행정에 과도하게 개입할리도 없다. 정권에 의한 ‘정치화’ 압력에 시달리던 행정관료제가 모처럼 ‘정치행정이원론’의 규범을 구현해 볼 수 있어야겠다.

셋째, 대법원장에 대한 청와대 ‘사찰’ 파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동안 사법부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남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제는 정치의 무능함으로 인해 엄청난 사안들이 헌재를 비롯해 법원으로 떠 넘겨져 있다. 오로지 헌법정신에 따른 정의로운 판결만이 사법부가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골격인 이들 삼부부터 촛불시위의 뜻을 담아 제자리를 찾아간다면 국정운영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거나 혹은 다른 때를 기다린다면, 변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임기 말까지 높은 국민적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의 실정과 부도덕성, 그로 인해 전개된 탄핵정국은 한국인들에게 난국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난국마저도 우리는 국가운영을 개혁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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