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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집에서 쫒겨난 사람들, 무엇이 문제일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현실의 재현에 무게를 둔 리얼리즘 소설이 문학적 장치를 통해 현실을 투영해 내는 것이라면, 르포타쥬는 현실을 그대로 묘사해내는 미러링에 가깝다.

매슈 데스몬드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의 저서 ‘쫒겨난 사람들’(동녘)은 도시의 빈곤에 대한 섬세하고 생생한 기록으로 논픽션, 르포의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쫒겨난 사람들’은 매튜 교수가 수 년동안 미국 밀워키 지역 도시 빈민들과 함께 살았던 시간을 담은 현장 기록물이다. 빈곤의 풍경을 세밀화처럼 그려냈지만 마치 발자크나 위고의 소설을 읽는 듯한 감동을 준다.

쫒겨난 사람들/매튜 데스몬드 지음,황성원 옮김/동녘

도시 빈민층에 해당하는 여덟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대도시에서 주거 정책이 어떻게 가난과 불평등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매튜 교수가 만난 도시빈민들은 수입의 대다수를 월세로 지출했다. 그러다보니 의외의 지출이 생기기라도 하면 집세가 밀려 집주인으로부터 쫒겨나는 신세가 된다. 생활의 기반이 통째로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책은 소설 같은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함박눈이 내리는 거리, 소년들이 눈뭉치를 던지며 장난을 친다. 눈뭉치는 자연스레 표적을 찾기 마련. 소년들의 눈은 눈길을 더듬더듬 진입하는 자동차를 향한다. 눈뭉치는 날아갔고 아이들은 잽싸게 길가 허름한 아파트로 숨어든다. 차에서 내린 사내는 소년들이 사라진 아파트로 씩씩 거리며 다가가 세게 발로 문을 찬다. 오래된 문, 싸구려 자물통은 속수무책으로 부서져 버린다. 집주인은 이 사실을 알고 이 가족들에게 방을 빼라고 큰소리친다. 집을 구할 길 없는 엄마, 알린은 그 날 두 아들을 노숙자 쉼터로 보내야 했다

.

가난한 이들에게 퇴거는 일회적이지 않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구조화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퇴거에 무감각해진다.

매튜 교수는 이런 수많은 가정들을 보면서 도시의 주거정책에 의문을 품는다. 그가 일일이 발로 뛰며 찾아낸 결론은 정부가 빈민들이 쫒겨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거를 방조하며 집주인들이 멋대로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통계학적인 수치보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진실을 보여주고 한다.

책에는 2005년 카트리나 태풍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로 자비를 들여 자원봉사를 떠난 도린의 이야기도 있다. 도린의 가족은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봉사때문에 오히려 월세가 밀려 퇴거를 당하게 된다. 또 언젠가는 가석방담당관이 돼 본의 아니게 범죄자로 전락한 친구들을 돕겠다는 패트리스,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싶어하는 알린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저자는 빈곤이 게으르거나 사회 부적응의 결과가 아니며 이들도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몫을 다하고 남을 도우면서 살고 싶은 소망을 지닌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단순히 가난의 일상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학자로서 그는 임대료에서 이윤을 얻을 자유와 안전하고 적정한 가격의 주택에서 살 자유가 상충하지 않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영국의 주택수당과 네덜란드의 주거급여처럼 일정 수준 이하의 소득을 버는 미국의 모든 가정에 주택바우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세입자들에게 양질의 주택을 제공하는데 도움을 주고, 극빈자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퇴거가 일상인 사람들에 관한 저자의 연구는 ‘밀워키지역 세입자연구’라는 결과물로 나왔고, 이 연구성과는 지난해 미국 맥아더재단이 수여하는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했다. 저자는 이 연구를 통해 주거문제가 빈곤의 주요 원인임을 밝혀낸다. 특히 여성이나 흑인과 같은 소수일수록 퇴거에 더욱 취약하다는 사실을 설문조사와 통계를 기반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이 연구성과물을 담은 것으로 한국적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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