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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조경규 환경부 장관] 흙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12월 5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토양의 날’이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내 어린 시절, 진흙으로 성도 쌓고, 먼지 날리는 흙바닥에서 구슬치기도 했다. 요즘은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9명 이상이 도시에 산다니, 아이들이 흙장난은커녕 하루에 한 번 흙을 밟아보기도 어렵겠다. ‘신토불이’라 했건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시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흙을 접할 기회조차 잃어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흙과 사람들의 접점이 줄어든다고 그 소중함마저 잊혀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도 흙은 생명의 터전이다. 한 줌 흙 속에 수십억 개의 생명체가 살고 있고 그 속의 자양분이 땅 위에 살아가는 온 생명을 지탱해 준다. 또한 흙은 인류문명 태동의 원동력이었다. 메소포타미아, 황하 등 고대 문명은 비옥한 토양 위에서 꽃피웠다.

환경적 측면에서도 토양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역할을 한다. 오염물질을 정화하며, 빗물을 저장해 홍수를 예방한다. 토양을 거치며 깨끗해진 지하수는 맛좋고 건강한 샘물이 된다. 또한 토양은 탄소순환체계에서도 중요하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토양탄소의 저장과 지구온난화 방지’ 자료에 따르면 지구 토양 중 유기물에 저장된 탄소가 약 2조5000억t으로 대기 중의 7600억t보다 3배 이상 많다.

이렇게 많은 혜택을 주는 토양이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로 본래의 기능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토양오염은 토양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토양이 오염되면 농작물도, 식수도 오염시켜 결국 사람의 건강마저 위협한다. 토양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토양오염 사례가 1978년 미국 뉴욕 주 나이아가라폴스 지역에서 발생한 ‘러브캐널’ 사건이다. 이 지역은 지금도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구(舊) 장항제련소’ 주변이 중금속으로 오염된 것이 드러나, 애써 키운 농작물이 폐기되고 주민들은 이사를 가야 했다. 이 일대는 3600억 원이 드는 토양정화 사업을 시작한지 벌써 4년째이다.

이렇듯 한 번 오염된 토양은 복원이 어렵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 토양을 건강하게 지키는 가장 좋은 길은 사전에 오염을 막는 것이다.

토양오염 예방을 위해 환경부는 잠재적 토양오염원을 인벤토리로 구축해 관리하고, 기름 누출이 잦은 주유소를 대상으로 이중배관, 누유경보장치 등을 갖추어 인증 받도록 하는 ‘클린주유소’ 사업도 벌이고 있다. 올해 지정된 클린주유소는 10월 말 기준으로 792개소다. 농촌의 토양과 지하수 오염을 막으려면 지나친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량도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 농지 1㏊ 당 질소비료 사용량은 224.6㎏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많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아스팔트, 보도블럭 밑에 숨어있는 흙을 살펴보자. 발 아래 부드럽고 건강한 흙의 촉감을 우리 아이들도 거리낌 없이 느낄 수 있는 이 땅 되기를 소망한다.

조경규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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