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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에 없던 이야기, 유일본 고전소설 세 편 발굴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국립한글박물관이 그간 세상에 알려진 바 없는 유일본 고전소설 세 편, ‘산곤륜전’‘허인전’‘효우창선록’을 발굴했다.
이 세 편은 모두 필사본으로 동종 이본이 없는 유일본이다.
‘산곤륜전’은 박순호 원광대 교수가 수집,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신해년 1911년 김복이라는 책주가 필사했다는 표기가 책 끝에 적혀 있다.


19세기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산곤륜전’은 산곤륜과 유화월이라는 남녀 주인공이 운명적 액운을 겪고 후에 왕위에 오르게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환상적으로 그린 소설.
양승민 선문대 교수는 “‘산곤륜전’은 유형적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당히 복합적이고 실험정신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라며, “창의적인 작법과 요소들이 대거 나타나는 흥미진진한 내용에, 서사적 구성, 언어 및 문체 등에 있어서도 매우 참신하고 완성도가 높은 수작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특히 국문통속소설은 대개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중국인의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는데 반해, ‘산곤륜전’은 ‘조선’을 끌어들인 점은 매우 새롭고 독특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망하면 조선도 망한다’는 생각에 조선왕은 무하관군 총 8만, 시위대군사 70만, 갑병 15만, 보졸 30만, 도합 123만의 대군을 파병하는데, 조선군의 상세한 설정은 이례적이다.

동성애적인 요소도 들어있다. 여주인공 유화월이 오랜 세월 남복(男服)을 하고 남성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다른 한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고전소설 가운데 동성애를 다룬 작품은 ‘방한림전’ 정도로 희귀하다. 결말부에서 성소저는 남경왕에 오른 산곤륜의 후궁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미 남복한 유소저에게 정절을 잃었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이를 유소저가 사랑하는 성소저를 평생 곁에 두고 싶어서 그녀를 후궁으로 들인 것일지도 모른다고 해석했다.
양 교수는 특히 ‘산곤륜전’의 창작성을 높이 평가했다. 이야기구조가 복잡하고 실험적이라는 것. “ ‘초한전’‘심청전’‘흥부전’‘토끼전’‘구운몽’‘삼국지연의’ 등 기존의 유명한 소설 여러 작품을 읽고서 부분적 사건이나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변용, 창작했다”고 밝혔다.

‘허인전’ 역시 박순호 선생이 소장해오던 것을 한글박물관이 넘겨 받은 것으로 한글 유일본 필사본 소설이다.장편 군담소설 유형에 속하는 이 소설의 주 내용은 명나라 정덕제 무종이 양자로 들인 류경복이란 이가 역모를 일으켜 황위를 찬탈한 뒤, 충신 허운 및 그 아들
허인이 그에 맞서 싸워 무종의 아들 홍으로 하여금 황위를 되찾게 한다는 이야기다.

권혁래 용인대 교수는 이 작품의 가치를 우선, 고소설사의 전통을 이어받아 창작된 ‘20세기 초의 새로운 장편 군담소설 작품’이라는 데 두었다. 또 삼국지연의의 세계관과 창작수법을 수용하여 창작한 대체역사소설이라는 것.
‘허인전’은 대표적 군담소설인 ‘유충렬전’과 서사구조와 인물의 성격 면에서 유사하다.두 작품 모두 영웅, 충신의 일생을 그린 점에서 유사하지만 ‘허인전’은 허인이 황위를 찬탈한 류경복 일당과 수십 년 동안 여덟 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좀 더 장편화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천하를 다스리는 요체를 천수와 운수가 아닌, 인사 ㆍ인화(人和)로 본 점이 새롭다.

‘효우창선록’도 한글필사본 고소설로 현전 유일본이다. 가세가 기울어 부모를 봉양하기 어려워진 양반집 자제가 몸을 팔아 종의 몸으로부모를 공양하고 형재애를 발휘해 주의의 선심으로 결국 가족들 모두 서울 삼청동으로 복귀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양반신분에서도 신분을 파는 매신이 일어나던 조선후기의 시대 현실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차충환 경희대교수는 “1910년대 이후에 창작된 서사 작품 중에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과 서사 형태를 지닌 작품은 없다”며, 그런 점에서새로운 서사 형식을 개척한 의의는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유일본 세 고전소설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6일 국립한글박물관 강당에서 진행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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