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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영화X정치]2012~2016 ‘레미제라블’, 혹은 朴정부의 시작과 끝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처음은 ‘눈물’이었고, 두번째는 ‘노래’로 불려나왔다. 시작은 ‘위로’였지만 그 다음은 ‘분노’였다. ‘장발장의 죽음’으로 나타나 ‘코제트의 희망’으로 되살아났다. 2012년과 2016년, 한국인들과 만난 ‘레미제라블’이다. 

▶2016년 광화문, ‘민중의 노래’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5차 촛불집회에서는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영화 ‘레미제라블’의 노래를 번역가사로 불렀다. 원제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인데, 우리말로는 ‘민중의 노래’라고 이름붙였다. 직역하다시피한 가사를 두고 듣는 사람마다 “지금의 우리 사정과 어쩌면 이렇게 잘 맞느냐”고 했다. 이랬다.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리네/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어떤 이들은 ‘노예’라는 단어에서 교육부 관료의 망언, “민중은 개돼지”라고 한 말을 떠올렸을 터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자체가 ‘비참한 사람들, 미천한 사람들’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광화문 바로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공연단은 후반부 반복된 “너는 듣고 있는가” 대목에서 잠깐 멈추고, 모두 손을 들어 청와대쪽을 가리켰다. 시민들의 함성이 끓어오르고, 끝없이 이어진 촛불의 행렬이 더 밝아졌다. 그렇게 ‘레미제라블’의 노래는 끝을 향해 가는 박근혜 정부의 ‘엔딩곡’이 돼 갔다.

▶2012년 12월 19일, 박 대통령의 당선과 ‘레미제라블’의 개봉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부의 시작에도 ‘레미제라블’이 있었다.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 주연의 이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한 것은 지난 2012년 12월 19일이었다. 정확히 제 18대 대통령선거일,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날이었다. ‘레미제라블’은 당시 국내에서는 비흥행장르라던 뮤지컬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592만명을 동원해 그 이전까지 뮤지컬 영화로선 국내 최고 흥행작이던 ‘맘마미아’(457만명)의 기록을 깼다.

해가 바뀌어 ‘레미제라블’에 이어 흥행했던 작품은 2013년 1월 23일 개봉한 ‘7번방의 선물’이었다. 1281만명을 동원했다. 이 영화의 흥행 역시 아무도 예상못한 이변이었다. 당시로선 주연급 스타가 아니었던 류승룡이 주인공을 맡았고,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나 첨단컴퓨터그래픽, 꽉 짜인 스토리, 충격적인 반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흥행 참 알 수 없다’는 말이 참 많았다. 다양한 원인 분석이 뒤따랐다. 언뜻 보기에 가장 큰 공통점은 ‘눈물’이었다. 두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객석에선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많았다. 

▶장발장과 용구,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눈물

더 나아가면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전혀 다른 장르와 국적의 두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일단 선의를 오해받은 억울한, 혹은 바보같은 아버지가 주인공이었다. 장발장이나 용구(‘7번방의 선물’)나 모두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고초를 겪는다.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7번방의 선물’은 용구가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극을 고조시킨다. 선후는 다르지만 둘 모두 영어의 몸이었다. 그리고 장발장과 용구는 결국 딸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한마디로 하자면 두 작품 모두 ‘딸을 위한 억울한 아버지의 희생’을 다루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2012~2013년의 겨울에 왜 한국 관객들은 때아니게 ‘아버지의 희생’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됐을까.

추측과 분석은 해 볼 수 있다. ‘레미제라블’과 ‘7번방의 선물’ 이전에 한국 사회에선 충격적인, ‘아버지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차례로 서거했다.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정치지도자에 이어 사회의 귀감이 되던 종교지도자들도 잇따라 타계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2009년에 선종하고, 법정 스님이 2010년 3월에 열반에 들었다. 평범한 아버지들의 죽음도 있었다. 2009년 용산참사로 많은 가장들이 목숨을 잃었다. 역시 그해 일어난 쌍용차 정리해고와 노조 파업사태로 지금까지 28명이 자살하거나 사망했다. 한국 사회는 1~2년 새 집중적으로 정치 민주화를 이뤄온 아버지들을, 정신의 버팀목이 되던 아버지들을, 산업의 역군ㆍ가족의 희망이던 평범한 아버지들을 잃었다. 그중 어떤 아버지들은 억울했고, 바보같기도 했다. 그 정서적 반응, 혹은 회고가 2~3년 후의 극장에서 나타난 것은 아닐까. 공교롭게 ‘레미제라블’과 ‘7번방의 선물’이 흥행하던 2012~2013년 겨울을 전후로 해서 대중문화에선 아버지를 눈물겹게 그린 작품들이 많았다. 

▶장발장을 애도하는 눈물에서 코제트의 내일을 위한 노래로

‘레미제라블’의 마지막은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구체제와 시민군이 대치하는 프랑스 혁명의 전장이다. 영화는 이 혁명이 장발장의 것이 아니라 그의 딸(수양딸) 코제트와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의 ‘내일’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장발장은 혁명에 뛰어든 마리우스를 위해 희생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한번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읽혔던 영화를 4년 후 ‘딸의 내일’을 위한 작품으로 다시 호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주말마다 잇따르고 있는 촛불집회에 대해 국내외에서 많은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광장에선 머리가 희끗한 4ㆍ19세대부터 80년 광주세대, 87년 6월세대를 거쳐 나이어린 중고생까지 만나 어우러진다. 어김없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도 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가 낯설지 않다. 이 역사의 현장이 향하는 곳은 ‘민중의 노래’가 가리킨다.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고 말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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