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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길 먼 보행천국①] ‘인도 위 지뢰’ 불법적치물…상인 반발에 단속은 시늉만
-홍대 등 거리 곳곳 인도에 상품진열…보행자 위협

-적발해도 87%는 계도만…단속은 10건 중 1건 수준

-올해 과태료 2억원 넘게 부과했지만…50%는 안 내


[헤럴드경제=강문규ㆍ이원율 기자] #.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일대를 찾은 강모(26) 씨는 당황스러운 일에 휘말렸다. 그는 골목길로 가던 중 인파에 밀려 순간 비틀거렸고 실수로 옷가게 앞 진열된 대형 옷걸이를 넘어뜨렸다. 뛰쳐나온 주인은 당장 물어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10여분 실랑이 끝에 강 씨는 “안 그래도 좁은 골목에 이렇게 물건을 쌓아두는 자체가 불법이 아니냐”고 따졌고 주인은 그제서야 “다음부터 조심하라”며 가게로 들어가버렸다. 강 씨는 “나도 잘못은 했지만 가뜩이나 좁은 인도에 자신의 물건을 쌓아놓고도 당당한 가게주인의 태도에 화가 난다”며 “행정당국이 단속을 제대로 안 하니 피해는 보행자만 뒤집어 쓰는 게 아니냐”고 토로했다.

[사진=서울 마포구 홍대앞 거리의 모습. 불법 적치물이 놓인 골목에 차량이 지나가자 실제 보행자가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은 1m도 되지 않아보였다.]

도로법 제75조 등에 따르면 허가 없이 장기간 인도 등 도로에 쌓아둔 물건은 모두 불법 적치물이다. 하지만 불법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서울 도로 곳곳은 온갖 상품ㆍ광고물 등 불법 적치물이 활개치며 보행자를 위협하고 있다.

상권이 몰려있는 중구, 마포구 등 5개 자치구 자료를 취합한 결과 작년 5개 자치구 내 불법 적치물 계도ㆍ단속 실적은 3만8622건ㆍ6582건으로 나타났다. 월 평균값은 각각 3218건ㆍ548건을 기록했다. 올해 1~9월 기준 계도ㆍ단속 실적은 2만9740건ㆍ4085건으로 월 평균 3304건ㆍ453건 수준이었다.

계도 실적은 높아졌지만 단속 실적은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 불법 적치물 발견 시 10건 중 9건(87.93%)은 경고로만 끝난 셈이다. 2014년 또한 모두 4만4893건 불법 적치물을 적발했지만 3만9278건(87.49%)을 계도 처리하기도 했다.

이에 불법 적치물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계도 위주 행정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보행 안전과도 직결된 만큼 단순 경고 수준을 넘어 단속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마포구 홍익대 일대에는 폭 4~5m 남짓 인도에 가게에서 내놓은 옷, 악세사리 등 물건들이 인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길에서 보행자들이 인도에서 밀려나는 경우도 눈에 띈다. 각종 상자들이 즐비, 보행길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은 중구 평화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인도에는 공간이 없어 차도로 걸어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운전자들이 수시로 경적을 울렸지만 어쩔 줄 모르는 것은 보행자도 마찬가지였다. 주부 김자현(40) 씨는 “어차피 단속원이 온다해도 주의만 줄 것을 알기 때문에 신고할 마음도 안 든다”고 했다.

자치구는 상인 반발 등으로 단속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중구 관계자는 “보행 불편 등 민원은 많이 들어오지만 상인 반발이 심하다”며 “왜 나만 단속하느냐고 멱살 잡히고 욕 먹는 일은 기본이고, 폭행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또 단속을 해도 면적 1㎡ 당 10만원의 과태료 납부는커녕 ‘멱살이라도 안 잡히면 다행’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5개 자치구는 올해 1~9월 기준 불법적치물 단속을 하며 2억8650만원 과태료를 매겼지만 납부받은 금액은 1억3622만원(47.54%)에 불과했다. 납부하지 않은 채 기간을 넘기면 체납이 되고 재산압류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해도 아랑곳 않는다는 게 자치구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생계형으로 취급, 압류까지 넘어가는 일은 드물다고 들었다”며 “단속 시스템 자체도 손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상인들은 불법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장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의류를 판매하는 김모(46) 씨는 “주변 가게들도 경쟁적으로 물건을 내놓는 마당에 우리만 법 지킨다고 들여놓으면 손님이 뚝 끊기지 않겠느냐”며 “일대 모든 가게를 동시에 통제하지 않는 이상 단속만으로는 근절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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