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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측근, 멘토, 친인척이 뭐길래…권력의 독버섯 ‘비선실세’

[헤럴드경제]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순실의 시대’로 패러디한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강타했다. 지난 26일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브리핑에서도 화제로 다룬 이 사진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분노와 상실감, 자괴감에 빠진 국민들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다.

요즘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최순실 이름 앞에 따라붙는 ‘비선실세’란 말은 일상어가 됐다. 여기서 ‘비선(秘線)’의 사전적 뜻은 몰래 어떤 인물, 단체와 관계를 맺는 것 또는 그런 관계다. 즉 비선실세는 실체를 숨기고, 국가 권력을 뒤에서 조종하는 실제 세력이나 그것을 지닌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역대 비선실세들은 대부분 친인척이었고, 이른바 ‘측근’, ‘멘토’들도 여럿 포함됐다. 이들은 때론 대통령을 능가하는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다가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아니나 다를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다. 통제받지 않은 권력은 설령 법의 심판은 피해간다고 해도 준엄한 역사적 평가가 뒤따랐다.

국정을 농단해 ‘밤의 대통령’이란 불리는 최 씨는 어떤 결말을 맺을까. 굴곡진 우리 근현대 정치사의 비선실세 계보를 들여다봤다.

▶권력의 ‘독버섯’ 측근ㆍ친인척의 입김 대통령 능가=근현대 정권의 대표 비선실세로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고 차지철 전 대통령 경호실장이 거론된다.

지난 1953년 입대한 그는 장교에 오른 후 미국 포병학교와 보병학교를 거쳐 공수단 대위로 있던 1961년 5ㆍ16 군사정변에 가담했다. 이후 박치옥 공수단장의 소개로 박 전 대통령의 경호장교로 활동하며 정치에 입문, 민주공화당 상임 위원을 지냈다. 이어 국회 내무위원장을 거쳐 대통령 경호실장에 올라 득세했다.

그는 일정 직책을 갖고 활동해 엄밀히 말해 비선은 아니다. 하지만 공식 절차를 따르지 않고 주어진 자리를 능가하는 권한을 행사해 비선실세로 봐도 무방하다. 결국 그는 궁정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 씨도 ‘리틀 전두환’이라고 불리며 새마을 왕국을 건설했다는 말이 나돌 만큼 위세를 떨쳤으나 새마을운동본부 공금횡령 사건으로 구속됐다.
  
직선제 도입 이후엔 주로 친ㆍ인척이 비선실세로 떠올랐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는 영부인 김옥숙 여사의 사촌 동생 박철언 전 장관이 ‘6공화국 황태자’로 실세 노릇을 했다. 박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큰 공을 세워 정권의 막후 실력자로 부상했지만, 슬롯머신 사업자에게 뇌물 6억원을 받은 혐의로 1993년 수감됐다.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차남 현철 씨가 ‘소통령’으로 불렸다. 당시 청와대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현철 씨를 거친다는 얘기가 돌 만큼 그는 막후 실력자로 부상했으나 ‘한보사태’에 얽혀 구속됐다.

김대중 전 정권도 대통령의 삼남으로 ‘홍삼트리오’라고 불린 홍일ㆍ홍업ㆍ홍걸 씨가 임기 말 권력형 비리에 휘말려 오점을 남겼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대통령 오른팔로 불렸지만, 정권말 ‘박연차 게이트’로 철창 신세를 졌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으로 ‘봉하대군’으로 불린 건평 씨도 세종증권 매각 등 여러 이권에 개입해 결국 옥살이를 했다.

▶‘영포회’‘삼성동팀’‘팔선녀’ 등 비밀조직까지 등장=이명박(MB) 전 정권 시절엔 비선조직 ‘영포회’가 힘을 떨쳤다. 경북 영일ㆍ포항 출신 공직자들로 이뤄진 이 모임엔 MB 정부 핵심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그중 ‘영일대군’이라 불린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두고 ‘만사형통(萬事兄通ㆍ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이란 말까지 나왔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멘토’로 거론됐다. 박영준 전 차관은 MB정부의 자원외교를 사실상 주도하며 ‘왕차관’으로 위세를 떨쳤다. 그랬던 이들 3인방도 각종 비리에 얽혀 지탄을 받았다.
 
현 정권 들어서도 비밀모임들이 세간에 오르내렸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공식 캠프 배후에 ‘삼성동팀’ ‘논현동팀’ ‘강남팀’ 등의 비선조직을 가동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중 최순실 씨가 ‘삼성동팀’의 몸통이라는 설이 있다. 최 씨가 꾸린 비밀모임에는 현 정권의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씨와 펜싱 선수 출신 고영택 씨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또 재계 등을 아우른 여성인사로 이뤄진 비밀모임 ‘팔선녀’도 운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 씨 개인 PC 파일의 공개로 대통령 연설문 수정부터 청와대 인사 개입까지 그가 국정을 주무른 증거가 속속 나오면서 ‘대통령이 최 씨의 아바타냐’ 등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는 2014년 터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과 판박이다. 최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는 박 정권 초기 비선실세 의혹을 받았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 교수인 김정범 변호사는 “통제받지 않은 권력은 비록 법적인 재단을 피해간다고 해도 준엄한 역사의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며 “현명한 권력자라면 공개적인 시스템에 기초해 권력을 행사해야 하며 비선이나 측근 몇 사람의 목소리만 듣고 판단하는 협량(狹量)한 자세를 버려야한다”고 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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