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두 남녀, 엇갈린 ‘그날’의 기억…날것으로 부딪치다
조재현과 신예 옥자연-채수빈의 2인극
12세 소녀와 중년남자의 금지된 만남

‘소아성애’보다 기억이 부딪치는 ‘지금’ 강조
쉴새없이 쏟아지는 거친 대사, 긴장감 매력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은 뒤 수감 생활을 마친 50대 남자 레이. 이름까지 바꾼 뒤 가정을 이루고 새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20대 여자 우나가 찾아온다. 12살 때 겪은 사건 이후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내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고 발악하면서.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개막한 연극 ‘블랙버드’는 15년 만에 만난 두 남녀가 과거의 사건을 두고 엇갈린 기억을 쏟아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30년간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장르를 불문하고 ‘명품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배우 조재현(50)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12살 소녀와 중년 남자의 금지된 만남과 15년 만의 재회라는 다소 불편한 소재를 다루지만, 2005년 영국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초연된 이후 10여 년간 영국, 호주, 캐나다, 스웨덴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며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08년 국내 초연 당시 관객으로 공연을 본 조재현은 “신선하고 세련된 느낌을 받은 동시에 기회가 되면 언젠가 내가 꼭 배우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8년 뒤 그 바람이 이뤄졌다.


작품은 15년 전 사건의 진실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전개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처럼, 과거 사건과 현재 마주한 상황을 생생하면서 숨 가쁘게 전달한다.

레이는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어. 다 잃어버리고 난 후 다시 애써서 싸워 얻은 새로운 인생이 있다”며 과거를 외면하려 애쓰지만, 우나는 “지난 15년 동안 난 모든 것을 잃었어. 한 번도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으니까”라고 되받아친다.

조재현은 “레이라는 인물이 했던 짓에 대해서는 애정을 가질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배우로서 진심을 다하려 애썼다. 만약 ‘소아 성애’라는 소재를 전면으로 내세웠다면 공연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며,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레이와 우나의 기억이 부딪히는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조재현과 2인극 무대를 꾸미는 상대역에는 신인 배우 옥자연과 최근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활약한 채수빈이 더블 캐스팅됐다. 90분간 두 명의 배우가 극 전체를 이끌어 가고, 대사량이 많은 데다 감정 소비가 크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다.

조재현은 “이 연극은 날 것의 매력이 있다. 거칠게 대사를 내뱉다가 몇 대사가 뭉개져도 상관없을 만큼 긴박한데, 신선함을 가진 신예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오히려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작가 데이비드 해로우어의 의도가 더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에 집중했다. 번역을 함께 맡은 문삼화 연출은 “작가의 글쓰기가 전형적인 방식과 매우 다르다. 그는 스토리텔링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던져진 상황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관계하고 행동하는지만 집중한다. 아주 현대적인 연극이기 때문에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희곡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학생 이상 관람가. 관람료 3~6만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