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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무인도에서의 ‘금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한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할까?’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대지주의 꿈을 가진 농부 바흠은 바시키르 마을에서 아주 싼 땅을 살 계획이었다. 촌장은 하루 단위로 땅을 판다며, 1000루블을 내면 하루에 걸어서 갔다 온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하며, 돌아오지 못하면 땅도 돈도 무효였다.

바흠은 빠른 달음박질로 땅을 계속 넓혀나가지만 남은 땅들이 아까워 쉬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방향을 틀어, 숨 막힐 듯 달려서 해질 무렵 출발점에 간신히 돌아오지만, 그는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고 만다. 촌장은 파홈에게 “정말 엄청난 땅을 차지했구려!”하고 칭찬한다. 바흠은 관 하나를 묻을 만큼의 땅을 차지했던 것이다.

가을에 읽을 만한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 모임에서 이 화두가 던져졌을 때, 필자는 존 서덜랜드의 저서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의 첫 부분을 들려주었다.

즉, 영국 BBC 라디오의 프로그램인 ‘무인도 디스크’에서는 진행자가 초대 손님에게 무인도에 어떤 책을 가지고 가고 싶은가를 반드시 묻는다고 한다. 하지만 무인도에 가져갈 수 없는 책들이 있는데, 성경과 셰익스피어 작품들이었다.

앞선 조난자가 이미 섬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섬의 고독한 삶을 위해 선택된 책들은 제인 오스틴을 비롯해서 위대한 문학작품들이 많았다.

필자는 1942년에 시작된 라디오 프로그램인 만큼 수천 명의 손때가 탔을 성경과 셰익스피어 책들을 굳이 섬에서 읽지 말고 여기서 읽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그때, 지인 A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한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할까?’를 제안했던 것이다. A는 이 소설의 모티브가 성경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으로 눈에 보이는 땅을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아브라함은 더 많은 땅을 보겠다며 돌아다니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기 때문에 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지인 B는 무인도라면 더 많은 땅을 얻겠다고 돌아다닐 이유가 없으니,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을 무인도에서의 ‘금서’로 정하자고 했다. 무인도에서는 한 사람만 더 기적적으로 나타나 주기를, 그래서 땅은 물론이고 영혼까지도 나누며 살고 싶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을 추천 도서 대신에 무인도에서의 금서를 하나 둘 찾아내기 시작했다.

전쟁과 돈, 그리고 명예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내용의 것들이었다. 같이 살아갈 인간이 없으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자산들이었다. 무인도에서의 금서 목록을 진행할수록, 지독하게 열망하던 많은 것들이 빛바래고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냈다.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우리는 예상 밖의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서로 사랑하지 않더라도, 만나기만하면 ‘활발하게’ 싸우는 관계라도, 아니 무엇인가를 향해 지독하게 질주하는 욕망의 순간이라도 사람의 귀함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다.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느슨한 사람들의 존재 가치가 갑자기 가을의 붉은 색처럼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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