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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업, 내년에도 ‘치킨게임’은 계속된다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전세계 조선사 대표들이 모였다. 조선업황 악화가 극악으로 치닫는 상태에서다. ‘이대로면 1년내에 모든 조선사가 다 망한다’는 비명이 조선업계 내에서 나오고 있다.

해법은 명쾌하다. 단기간 내에 ‘슈퍼 사이클’이 오기 어렵다는 점을 모두 아는 상황에서 각 조선사들은 생존을 위해 공급량을 줄여야 한다. 생산능력 감축이다. 그러나 누가 얼마나 줄이느냐에 대해선 국가별, 각 회사별 입장이 다르다. 치킨게임 양상으로 조선업이 치닫는 이유다.

치킨게임의 최종 승자는 ‘승자 독식’의 단맛을 볼 수 있다. 내년에도 글로벌 조선사들의 치킨게임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지난 19일부터 이틀동안 경주 현대호텔에서는 ‘제25회 세계조선소대표자회의(JECKU)’가 열렸다. 전세계 조선사 대표 및 고위 임직원 1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6년 글로벌 시장 기준 선박 및 해양 발주량은 지난해 대비 급감했다.

10월 현재 한국 조선사들의 수주 달성률은 10~20% 안팎에 어물고 있다. 중국 조선사들은 상당 부분 구조조정이 진행된 상황이고 중국 정부가 직접 발주한 물량으로 근근히 버텨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조선사들은 한국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부당하게 지원하고 있다며 외교문제를 삼을 태세다.

이번 행사에서 포문을 먼저 연 측은 일본 조선사였다. 무라야마 시게루 가와사키중공업 회장(일본조선협회장)은 지난 20일 기조연설에서 “최근 수년 동안 운송 물량 증가량보다 훨씬 많은 선박이 건조됐다”며 “과잉공급이 시장 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는데다 지금도 선박 수요보다 공급이 증가하는 상황”이라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시게루 회장은 이어 일본 조선사들의 1970~1980년대 정부 주도로 두차례 진행된 조선산업의 생산량 감축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처럼 한국 역시 생산량을 극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넣은 셈이다.

중국 조선사들도 ‘공급과잉’을 문제 삼았다. 궈다청 중국선박공업행업협회장은 “중국 업체들은 이미 생산능력을 많이 줄였다. 그러나 저가 제품 중심의 사업구조와 부족한 연구개발 능력, 기술력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며 “과잉공급을 해결하고 연구개발 능력을 키워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게 가장 큰 현안”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조선사측은 생산량 감축은 수용키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에 내정된 강환구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공급과잉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중동 국가들이 석유 생산량을 서로 합의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선소들도 각자 입장이 다르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가삼현 사장은 “일본은 이미 두 번에 걸쳐 많이 줄였는데 다른데도 줄이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외에도 국내 조선 ‘빅3(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역시도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총론에는 공감하지만 누가 얼마나 생산량을 줄일 것이냐에 대해선 입장이 다르다.

여기엔 한국 조선업의 성장 역사가 큰 배경이 된다. 한국 조선산업은 70년~80년대 사이 일본의 조선업 구조조정 덕분에 급성장한 측면이 크다. 일본이 선박 표준화를 통해 비용 절감에 나설 때, 한국 조선사들은 ‘발주처가 원하면 무엇이든 한다’를 기조로 전세계 발주 물량을 싹쓸이 해오다시피 했다. 일본 조선사들이 스스로 비워버린 조선 시장을 한국 조선사들이 치열하게 파고들면서 ‘세계 조선업 1위’ 자리를 한국 조선사들이 탈환한 것이다.

수주 물량이 쌓일 수록 기술력도 쌓였다. 일본 조선사들에 비해 한국 조선사들의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선박 건조 물량이 늘어나면서 점차 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에도 한국 조선업은 승승장구였다. 조선업의 특성상 그간 쌓아놓은 산더미같은 물량이 2~3년 가량을 버틸 수 있는 먹거리가 됐다.

첨예한 문제인 생산량에 대해 국내 조선사들이 선뜻 ‘알겠다’고 답하지 않는 이유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여기에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시선도 고깝다. 올해 5월 대우조선해양 정성립 사장이 “조선3사가 모두 생산량을 30%씩 줄이자”고 밝히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내놓은 바 있다.

2016년 한국 조선업이 구조조정 격랑에 빠져들게 된 원인은 사실 대우조선해양 탓이 크다. 지난 한해동안에만 수조원대의 영업적자를 내고도 여전히 추가 자금이 들어가야 되는 것이 대우조선해양의 현 상태다. 최근 맥킨지 보고서가 대우조선해양의 해체를 가정한 ‘빅2 체제’로의 산업 구조 변화를 조언한 것도 대우조선해양의 독자 생존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편 20일 종료된 행사에서 대표자들은 의장 성명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성명서에는 생산량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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