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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없는 게 죄인가”…대출 막힌 서민들 뿔났다
-LH 중도금 집단대출 불가ㆍ보금자리론 중단 후폭풍

-“대출 분쟁으로 불이익 예고” 온라인 카페 글 잇따라

-개인이 알아서 조달해야…대안 없는 서민들은 ‘막막’

-제2금융권 문턱까지 높아져…일반인 대출 환경 악화


[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무주택자의 돈줄까지 묶으면 결국 돈 있는 사람들만 돈을 불리라는 정책이나 마찬가지.” “보험을 깨고 퇴직금을 정산하고 신용대출까지 받아야 한다면 공공주택이 아니다.”

무주택자들이 뿔났다. 정부가 연말까지 보금자리론을 사실상 중단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중도금 집단대출까지 막혀서다. 여기에 은행권에 이어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서민층의 대출 환경은 나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8ㆍ25 가계부채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애먼 서민의 피해만 늘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은행권에 이어 저축은행ㆍ상호신용금고 등 제2금융권 가계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서민층의 한숨이 커졌다. 보금자리론은 중단됐고, 공공주택의 중도금 집단대출은 막혔다. 정부가 자금력이 부족한 무주택자를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의 절반 이상이 생계형 대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돈줄을 옥죄는 정책은 고스란히 서민의 피해로 이어진다”며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핵심 정책을 제외하고 눈앞의 현상에만 급급하면 시장에서 무주택자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요자의 혼란은 포털사이트 카페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창구를 중심으로 퍼졌다. 공공주택 입주예정자가 모인 카페의 한 사용자는 “시흥 은계 공공주택 청약을 생각했는데 중도금 대출이 막혀 계획이 전부 틀어졌다”며 “무주택자들 가운데 1~2억의 여윳돈을 가진 이들이 과연 있겠느냐”고 했다. 다른 누리꾼은 “최악의 경우엔 각자가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묻지마식 불통 행정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중도금 집단대출에 대한 부족한 안내는 예비청약자들의 혼란을 키웠다. 10월 공고를 낸 시흥 은계와 하남 감일을 제외한 단지들에는 ‘집단대출 불가(빨간색 글자)’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LH청약센터]

공공주택의 중도금 대출이 막히자 수요자들의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실제 LH는 “중도금 집단대출 협상이 진행 중이며, 은행과 금리는 추후 통보할 예정”이라는 애매한 답변만 내놨다. 최근 공공주택의 입주를 고려했던 박 모(40ㆍ경기도 시흥시) 씨는 “중도금 대출이 가능한지, 금리가 어느 정도인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며 “매월 정해진 카드 사용량을 채워야 하는 대출까지 알아봤지만, 부담만 눈덩이 같이 커졌다”고 토로했다.

18일 LH에 따르면 시흥 은계지구 B2와 호매실지구 A7ㆍB2, 화성 동탄2 A44, 하남 감일 B7, 부산 명지 등 총 6곳 5500여 가구 규모의 중도금 집단대출이 협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혼란을 가중한 대목은 중도금 집단대출 여부에 대한 안내가 부족한 모집공고였다. 현재 시흥 은계와 하남 감일을 제외한 나머지 단지의 공고에는 ‘집단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안내가 빠졌다. LH 관계자는 “이달 공고를 낸 시흥과 하남은 지자체 담당자가 집단대출 불가 내용을 포함한 것”이라며 “나머지 단지는 앞서 공고를 냈고, 중도금 집단대출 여부를 알 수 없어 모집공고에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통 창구와 정보력이 부족한 무주택자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댔다. 카페를 통해 집단대출 여부와 향후 일정, 주의사항을 공유했다. 일각에선 온라인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 움직임까지 감지된다. 한 누리꾼은 “청약 경험이 없는 무주택자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대출 분쟁 등 불이익에 대한 안내조차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한 주택담보대출인 ‘보금자리론’ 중단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한 SNS 사용자는 “보수적으로 자금 계획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목돈이 없는 서민에겐 언감생심”이라고 했다. 일부 누리꾼은 변경된 대출한도(1억원 이하)와 소득요건(부부합산 연 6000만원 이하) 등을 안내하며 주의를 당부했다.

보금자리론은 일반 주택담보대출보다 낮은 연 2.5~2.75% 금리로 최장 30년까지 빌릴 수 있어 3040세대에 인기가 높았던 상품이다. 주택금융공사는 지난 14일 밤 자격 요건을 연말까지 강화한다는 짤막한 공고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한 대출희망자는 “사실상 신청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한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표현했다. 다른 누리꾼은 댓글을 통해 “근무일도 아닌 주말에 기습적으로 올린 저의가 궁금하다”며 질타했다. 

[사진=정보력이 부족한 서민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댔다. 포털사이트 카페에서 대출 정보와 공공주택 일정까지 정보 교류가 활발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정부를 향한 질타와 서민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당부들이 이어졌다.]

일반인이 마주할 대출의 벽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2금융권까지 가계대출 심사가 깐깐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제2금융권 대출 금리는 4%대로 시중은행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대출 수요자들이 더 높은 금리로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면 저신용자 대출 상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오는 31일부터 농협ㆍ신협ㆍ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회사로부터 토지나 상가, 오피스텔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한도가 담보가치 대비 최대 15%포인트 줄어든다. 상호금융권 주택담보대출에 맞춰 ‘맞춤형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는 방안도 연내 나온다. 저축은행 가계대출은 건전성 감독 규제와 영업 규제 강화로 대출 속도 조절이 이뤄진다. 신청자의 기존 대출까지 따지는 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DSR)도 눈앞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연내 미국 금리가 인상되면 가산금리와 실질금리까지 올라갈 것”이라며 “서민 대출이 막히고 수요심리까지 얼어붙으면 내년 이후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가능성도 커진다”고 밝혔다.

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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