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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N 10년①] TV 플랫폼을 흔들고, 브랜드 가치를 만들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강산도 변하는 10년동안 미디어 환경은 격변을 거듭했다.

2006년 10월 출범, 지상파 방송사들이 대형 백화점처럼 우뚝 솟아있을 때 tvN은 미디어 시장에 첫 발을 디뎠다. 변두리 슈퍼마켓에 불과했던 이 채널은 소위 말 하는 ‘케이블-라이크’ 콘텐츠를 주도한 일등공신이었다. 지난 10년의 성장은 놀랍다. “사람으로 치면 열 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가능성이 있는 아이 정도”(이명한 CJ E&M tvN 본부장)라고 자평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tvN이 만들면 뭔가 다르다”는 시각이 자리 잡으며 경쟁사들은 tvN의 ‘뭔가’에 집중하고, 시청자는 이들의 ‘뭔가’에 빠져든다. 텔레비전 앞자리 숫자가 곧 시청률이었던 미디어 환경 속에서 성장해 탈(脫) 플랫폼 시대를 이끌었고, ‘잘 만든 콘텐츠는 찾아본다’는 확신으로 ‘콘텐츠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 tvN이 제일 잘 하는 것=지난 10년 tvN의 변화는 케이블 시장의 변화이자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도 맞닿아있다. “tvN의 3단계 성장”(이덕재 CJ E&M 미디어콘텐츠부문 대표)에는 케이블TV 콘텐츠의 변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지도 확보”가 지상 과제였던 2006년 채널 출범 당시 tvN이 제일 잘 하는 것은 ‘케이블-라이크’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다. 지상파 방송3사의 품격(?)있는 콘텐츠가 시청자들의 최대 먹거리였던 그 시절, tvN은 다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시청자 사냥’에 돌입했다. ‘독고영재의 스캔들’, ‘티비엔젤스’와 같은 프로그램이 주를 이었다. ‘논란’과 함께 성장한 채널이었다.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내부에선 대대적인 전략 수정기에 돌입했다. tvN 측은 그 시기를 ‘2008년~2010년’의 기간으로 보고 있다. “광고 매출이 정체되고 부정적 이미지”가 쌓인다는 판단으로 ‘대중친화적 콘텐츠’의 생산에 주력했다. 이 시기 만들어진 콘텐츠는 tvN이 현재까지 끌어가고 싶어하는 정체성의 한 축을 담당한다. ‘화성인 바이러스’와 ‘재밌는 TV 롤러코스터’가 대표적이다. 자유분반한 케이블 채널의 감성을 담으면서도 보다 다양한 시청층을 수용할 수 있는 콘텐츠였다.

2011년엔 KBS에서 ‘1박2일’ 신화를 이끈 이명한 PD(현 CJ E&M tvN 본부장)가 영입됐다. tvN은 채널의 슬로건을 바꿨다. “TV를 바꾸는 TV” 전략으로 이명한 본부장과 함께 tvN은 본격적인 탈(脫) 케이블화를 선언했다. 그 시절 이 PD와 함께 tvN으로 옮겨온 PD, 작가 사단의 활약이 시작됐다. ‘코미디빅리그’가 시작됐고, 2012년엔 ‘응답하라 1997’이 등장, 마침내 지금의 tvN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 케이블 드라마로선 경이로운 숫자에 해당하는 7.55%를 기록했다. 


이명한 본부장은 “2011년에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물리적으로 열세였던 채널이었다”며 “그 때만 해도 지상파 이외의 채널에 노출되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했던 때라 출연자 섭외도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캐스팅 리스트를 작성해도 퇴짜 맞기 일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얼굴을 발굴해 스타로 키웠다. 콘텐츠의 인기와 스타의 인기가 맞물려 파괴력을 발휘하자, 채널의 성장세가 시작됐다.

2013년 본격적인 세 번째 성장기에 돌입했다. 지상파 출신의 역량있는 PD들(이명한, 김석현, 김원석, 나영석, 신원호)의 영입이 큰 역할을 했다.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 나영석 PD의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시리즈, 김원석 감독의 ‘미생’, ‘시그널’, 김석현 PD의 ‘코미디빅리그’가 tvN의 간판 콘텐츠로 성장을 도모했다. 이명한 본부장은 그러나 “지상파 메인PD들의 역량도 있었지만, CJ E&M PD들이 지상파에 대한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며 “주니어 PD들의 재기와 역향이 합쳐져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부터 현재까지 tvN 콘텐츠의 가장 큰 힘은 ‘공감’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 ‘삼시세끼’ 등의 시리즈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인 향수와 정서를 주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명한 본부장은 “콘텐츠를 소비할 때 소비자들의 성향이 있는데, 그 중 tvN 콘텐츠는 각계각층이 깊은 공감 혹은 동의를 구하는 것을 잘 한다고 보고 있다”며 “tvN 콘텐츠는 현재 공감의 정서를 가장 잘 뽑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콘텐츠의 성공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발 맞춰 가공할 만한 위협을 주기 시작했다. 지상파 방송사에선 틈만 나면 ‘tvN 염탐’이 시작됐다. 2013년 ‘응답하라 1994’, ‘꽃보다 할배’는 물론 이듬해 ‘삼시세끼’까지 성공하자 복잡미묘한 시선의 기류가 포착됐다. 한 지상파 방송사 PD는 “다른 것보다도 자유롭고 유연한 조직 분위기와 하나의 프로그램에 전사적으로 접근하는 시스템이 부럽다”고 말했다. 


이명한 본부장은 “CJ E&M은 리뷰를 중시하는 조직이다. 이전 타사에서는 내 프로그램에 대해 리뷰하는 시스템을 경험하지 못했다”라며 “잘 되면 왜 잘 되는지 안 되면 왜 안됐는지는 피디의 몫이다. 그 원인을 공유해 성공확률을 노 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점이 장점이다. 대중의 잣대에서 실패한 콘텐츠라 하더라도 그것이 왜 새로운 시도였다면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가 정착돼 향후 새로운 장르나 포맷에 대해 서도 내부 레슨이 쌓여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tvN은 브랜드다”=10년간 쏟아진 무수히 많은 콘텐츠는 tvN 성장의 원동력이다. 케이블TV 콘텐츠 시청률 역사를 새로 쓴 ‘응답하라 1988’(18%), 국내 인기와 더불어 미국 지상파 방송사에서 리메이크된 ‘꽃보다 할배’ 등은 tvN의 자체 경쟁력을 높인 상품들이다.

출범 초 500억원의 투자로 과감하게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 뛰어든 tvN은 해마다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덕재 대표는 “10년간 10조원 이상을 자체 기획과 제작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올해엔 1500억원을, 내년엔 이보다 25~30%를 더 투자할 계획이다.

기획부터 홍보까지 전사적 역량이 투입돼 만든 tvN 콘텐츠는 하나의 브랜드가 돼 시장 가치를 높이면서 각각의 콘텐츠가 기존의 것과는 다른 ‘차별성’을 가진다.

이 본부장은 “차별성은 개국 당시부터 지금가지 일관되게 지켜여할 가치”라며 “지상파 콘텐츠와는 어떤 식으로든 차별화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고 했다.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tvN 만의 색깔, 타방송사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최근 tvN의 가장 큰 고민은 이미 알려진 시리즈 등의 대작 콘텐츠 이외에 주중을 받쳐줄 힘 있는 예능 콘텐츠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집밥 백선생’이 tvN 주중 예능 최초로 최고 8%까지 시청률이 오르며 화제가 됐으나, 올해엔 특히나 정체된 분위기다.

이 본부장은 “내부적으로도 주말에 비해 주중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다 답답하고 조바심이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라며 “하지만 조바심이 난다고 해서 채널의 기저를 무너뜨리고 시청률이 잘 나올 것 같으니 ‘미투’ 프로그램으로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유혹은 있지만 아직은 버티면서 차별적인 시도를 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 차별성이 ‘더 지니어스’나 ‘SNL코리아’ 등과 같은 마니아 층을 가진 프로그램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과 더불어 tvN 콘텐츠는 각각의 독측함으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게 됐다.

이명한 본부장은 “tvN 콘텐츠는 단지 하나의 프로그램을 떠나 각자의 브랜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지니어스’는 소수가 좋아하는 중소 브랜드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있고, ‘삼시세끼’, ‘꽃보다’ 등은 이미 대형 브랜드로 자리했다”며 “PD들에게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씨앗인지 아닌지 고민해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것 자체로 충성도 깊은 시청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열 살이 된 지금 tvN은 향후 ‘훈남 청년’을 꿈 꾼다. “사람의 인생은 중고등학교에서 20대에 정립되는데, 현재로선 싹수가 보인다. 훈남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이명한 본부장) 시기다.

향후 10년의 그림은 보다 분명해졌다. tvN은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채널‘로 본격적인 도약을 시도하고, 탈 플랫폼 시대에 발 맞춰 디지털 콘텐츠 역량 강화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이 본부장은 “또 다른 브랜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디지털에 최적화된 콘텐츠로 변주하는 작업을 하되 온라인 시장에서도 기존의 콘텐츠 제작사를 따르기 보단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기반으로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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