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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철학하지 않는 어른
추석 즈음에 지인으로부터 책 선물이 도착했다. 뜯어보니, 아무래도 배달 착오가 있는 듯했다. 두꺼운 표지와 얇은 내용물의 글과 그림도 그러려니와, ‘어린이용’이라는 글자까지 표지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려줄 요량으로 구석에 모셔두었다가, 추석 연휴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 다시 책을 살펴보게 되었다. 프랑스의 브르니피에 박사가 낭테르 어린들이들과 나눈 철학 논제를 담은 책이었다.

10세 전후의 ‘어린이용’이었지만, 그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예사롭지 않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감정이란 무엇인가?/ 함께 사는 게 뭐예요?/ 행복이 뭐예요?/나는 누구일까요? 예술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필자는 다음 질문 앞에서 뒤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술이 뭐예요?’ 이 질문들은 필자가 수업시간에 때때로 대학생들에게 던져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철학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교양과정의 ‘언어철학’이라는 과목이었는데, 남아있는 당시의 기억은 ‘어렵지만 뭔가 중요하다’라는 느낌 정도이다. 그 뒤 문학을 전공하던 프랑스 유학시절, 프랑스 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철학이며 그리스 철학까지 섭렵한 학생들을 따라잡는 것이 무척 힘든 과정이었다.

한국 유학생은 철학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철학에 대한 기초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유를 요구하는 철학적 과제를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 철학은 좀 유별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었다.

프랑스 어린이들은 철학공부를 계속해나가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철학은 중요한 필수과목 중의 하나이다. 합격하면 별도의 입시 없이 어느 지역 어느 대학에나 지원할 수 있는 바칼로레아는 15개 과목이 모두 논술로 진행된다. 특히 철학은 세 가지 논제 중 1개를 선택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2016년에는 ‘욕망은 무한한 것인가?’라는 인문학 문제 등을 4시간에 걸쳐 답을 작성해야했다. 국민들은 “마치 자신이 시험을 치르듯” 그 논제를 기다리고, 시험이 끝나면 가정이나 학교, 언론매체들이 각종 토론회를 열어 다양한 사유의 스펙트럼과 해답을 찾는다. 철학은 프랑스인의 사유의 바로미터이자 지성의 상징인 셈이다.

한국 어른들의 철학 상태는 어떨까. 얼마 전 한 대학교수를 만나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는데, 그쪽에서 명함을 건네며 양해를 구했다. ‘문예창작과’에서 ‘교양학부’로 옮겼는데, 미처 명함을 수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내에서 ‘철학과’와 ‘문예창작과’가 제일 먼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취업률 등의 잣대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바칼로레아의 또 다른 필수 과목이 프랑스어인 반면, 최근 우리 사회는 국어과나 국문학과도 여지없이 사라져가는 곳이 많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해야하는 교육의 요람에서, 특별한 철학적인 고민도 없이 진행되는 현상이다.

어린이용 철학 논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필자에게 질문 하나가 저절로 올라왔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은 철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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