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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김영란의 ‘병신경장’...공자가 “밥 먹을 때 말하지 말라”한 이유(?)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의식주 모두 중요하지만, 그래도 먹거리가 가장 우선이다. 먹거리에 따라 주거가 정해지고, 옷이 뒤따른다. 다양성과 확장성에서도 먹거리가 단연 으뜸이다. 집이나 옷의 종류가 음식만큼이나 다양할까. 먹거리를 얻는 활동은 매일매일이다. 가장 잘 전승된다. 동질감에서도 먹거리 만한 게 없다. ‘가(家)’는 ‘한 집(宀)’에서 ‘먹을 것(豕)’을 키운다는 뜻이다. 가족이 ‘식구(食口)’인 이유다.

논어 향당(鄕堂)편은 일상에서 공자(孔子)의 몸가짐, 옷차림 그리고 식습관을 묘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식불어 침불언(食不語 寢不言)’이 있다. 그대로 풀면 ‘먹을 때 대꾸하지 말고, 잠자리에서 말하지 말라’다.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에 양화(陽貨)라는 권력자가 있었다. 그는 공자를 회유하려 돼지(豕)를 선물로 보낸다. 공자는 직접 양화의 집까지 찾아가 거절한다. 당시 노나라 풍습은 먹을 것을 선물 받으면 반드시 부탁을 들어줘야 했다.


양화의 얘기는 논어에도 실려있다. 먹거리를 매개로 한 청탁을 주의하라는 뜻이 ‘식불어’에 담겨 있는 게 아닐까? 같은 맥락으로 ‘침불언’은 같은 베개를 베고 한 이불을 덮는 이들에 대한 경계가 아닐까.

논어 위정(爲政)편은 ‘백성을 형벌로 다스리면 이를 피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르지만, 덕으로 이끌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잘못을 바로잡는다’라고 가르친다. ‘얻어 먹는 것’은 신세갚을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니 ‘내가 먹은 값은 내가 치르는(dutch pay)’ 게 먹거리 청탁을 막는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모든 상황이 명확하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비싼 소고기를 즐겨 먹는 사업가 A와, 삼겹살 정도를 감당할 수 있는 공직자 B는 친구다. 삼겹살을 먹는다면 각자 계산을 하면 된다. 그런데 소고기를 먹으면 B의 부담이 커진다. 그동안의 한국적 정서에서는 A가 B에 가끔 소고기를 사면 됐다. 그런데 28일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에서는 법 위반이다.
 
아무리 친구사이라도 청탁이 동반됐다면 얻어먹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먹거리는 꽤 강한 유혹이다. 그래서 비싼 음식은 제 돈 내고 먹으리고 강제한 것이 김영란법이다. 이 점에서는 본능에 충실한 동물성 대신 이성적으로 인격의 존엄을 지키도록 한 법이다.

초청자가 다 대접하는 우리의 ‘잔치 문화’, 사는 형편이 달라도 ‘밥 살게’ ‘밥 사라’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 동안의 한국적 정서는 미풍으로 보는 시각도, 구태로 꼬집는 목소리도 공존했다. 이러한 정서에 충격을 줄 김영란법은 ‘경장(更張)’ 수준의 사회적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가 병신년이니 ‘병신경장(丙申更張)’이라할 만하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다. 법(法)이란 물리적 강제로 인해 자칫 온기가 있어야 할 인간관계를 청탁와 응탁의 차가운 관계로만 보게 될까다. 청탁과 응탁은 지양해야 하지만, 따듯한 인간관계는 지향해야 한다. 1인가구가 늘고, ‘혼술ㆍ혼밥’이 보편화되는 지금이 과연 바람직한가? 소통이 막히면 계급ㆍ계층간 장벽이 두터워져 사회구조가 경직될 수도 있다.

진짜 상위 1%에게는 이제 '미끼'로 세상을 움직이기가 조금 더 어려워질 수도 있지만,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세상의 이목들이 얼씬거리지 못한 데 따른 시원함도 있을 지 모른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김영란법의 긍정적인 효과는 받아들이되, 부작용이 있다면 고치려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장자(壯子) 우화(寓話)에서 온백설자(溫伯雪子, 도가의 현인)는 공자를 만나본 후 “예의에는 밝지만 사람의 본심을 아는 데는 졸렬하다. 표면상의 형식에만 치우치더라”라고 한탄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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