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대우 기자]‘흡연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담뱃값 인상과 금연구역 확대, 담배경고 그림 도입 등 다양한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3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12%가량 높은 남성흡연율을 2020년까지 29%로 낮추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는 작년부터 담배값을 4500원으로 인상하고 100㎡이상 영업소에만 국한하던 금연구역을 모든 영업소로 확대했으며, 오는 12월 23일부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하는 비가격 금연정책인 ‘담뱃갑 경고그림 표시’ 제도를 시행한다.
또, 금연치료 프로그램 본인부담도 면제한다. 복지부는 기존 금연치료 프로그램(8주~12주)을 모두 이수한 경우 본인 부담금의 80%를 되돌려 주던 방식에서 프로그램을 일정 기간(3회 방문 시) 수행하는 경우 본인 부담금을 전액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2016 금연광고도 흡연의 폐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과거 금연광고와 달리 ‘사실성’을 강조해 표현했다. 복지부는 이밖에 흡연으로 질병에 걸린 흡연자가 직접 광고에 출연해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증언형 금연캠페인 도입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담뱃값 인상뿐만 아니라, 금연치료, 흡연자에 대한 배려 등 실질적인 금연정책을 펼쳐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시행한다고 발표한 담뱃값 인상은 오히려 서민증세 논란에 휩싸였다. 담뱃세 인상으로 감소했던 담배판매량이 올들어 다시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기대했던 금연효과는 사라지고, 서민들의 주머니만 턴 꼴이 됐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담뱃값 인상으로 지난해 담배세수가 2조8000억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세수는 이보다 8000억원 가량 많은 3조6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담배판매량은 2014년 43억6000만 갑에서 지난해 33억3000만갑으로 정부 전망치(34%)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은 23.7% 감소에 그쳤다. 정부가 서민증세라는 비판여론을 의식해 담뱃세 인상에 따른 금연효과를 지나치게 과장했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난 기금 역시 ‘건강 증진’과 ‘금연’을 위해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 담뱃값이 오른 첫해인 2015년 국가금연서비스 사업 예산은 2014년 113억원과 비교하면 1300억여원이나 늘어난 1475억원이 편성됐다. 그러나 올해 2016년은 1315억원으로 10%나 줄었다. 금연정책개발 및 정책지원이 50% 줄었고, 금연치료지원 및 학교흡연예방사업이 각각 36%, 25% 줄었다.
흡연구역에 대한 배려없이 무턱대로 늘린 금연구역 확대는 ‘혐연권(嫌煙權)과 흡연권’의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금연정책에 앞서가는 서울시내 실외 금연구역은 2011년 670여곳에서 지하철 출입구 주변, 버스정류장, 어린이집 주변, 도시공원 등으로 확대되면서 5년만에 1만7000여 곳으로 늘었다. 반면, 서울시 지정 흡연구역은 34곳에 불과하다. 이에 구석으로 내몰려 흡연장소를 찾아야하는 흡연자들은 “금연구역은 계속해서 늘리면서 흡연구역을 늘리지 않고 흡연부스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서 담배를 피워야 하냐”고 아우성이다. 흡연자들은 흡연부스가 좁고 환기시설이 부실해 ‘독 가스실’이라고 부르며 이용을 꺼린다.
우리와 달리 미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들은 ‘분리형 금연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분리형 금연정책’이란 담배를 끊게 할 수 없다면 거리 곳곳에 ‘흡연부스’를 설치해 흡연자의 흡연권을 보장해주면서 비흡연자들을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정책이다.
무조건적인 금연정책으로 흡연자를 규제하는 것보다 흡연자와 비흡연자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비흡연자의 건강권도 보호하면서 흡연자의 흡연권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금연정책이 필요한 때다.
담배에 비해 크게 낮은 금연치료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정부는 올해 1월부터 약국에서 바로 금연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금연 보조제를 무상으로 지급받을 수 있게 했다. 영국은 10년 전부터 의사 처방없이 지급이 가능한 바우처제도를 사용하고 있고, 지역에 따라 금연 상담사가 금연 보조제를 지급하기도 한다. 또 이들 국가에서는 흡연자가 약국, 대형할인점, 슈퍼마켓, 주유소, 잡화점 등에서 니코틴 보조제를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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