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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선진국은 화폐의 종말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종이 화폐를 폐지하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이런 도발적인 발언을 한 이는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석학 케네스 로고프다. 로코프 교수는 오늘날 금융과 재정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종이 지폐를 꼽는다. 현금카드와 스마트폰 지급결제 등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현금은 이미 퇴행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로고프 교수에 따르면 이는 큰 착각이다.

종이 화폐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5년 말 미국 통화중 1조 3400억달러는 은행권 외부에 소재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모든 남녀가 1인당 4200달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 대부분은 지갑에 잘 휴대하지 않는 고액권. 은행권 외부에 있는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화폐의 종말/케네스 로고프 지음, 최재형, 윤영미 옮김/다른세상

한국도 다르지 않다. 시중에 풀려있는 지폐의 78%가 5만원권인데 회수율은 가장 낮다. 불법과 범죄자금의 온상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종이화폐 폐지는 로고프 교수가 20년전부터 꾸준히 제기해온 사안으로 현실성이 높아가고 있다.

종이 화폐는 그에 따르면 사회악의 근원이다. 전세계 실물화폐의 70~80%를 차지하는 고액권은 주로 지하경제에서 유통되면서 조세회피, 범죄, 부패를 용이하게 하는데 쓰인다. 미국에서 조세회피는 국내총생산의 3%이상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지폐 폐지는 이런 반복적인 대규모의 익명성 자금 이동을 어렵게 해 탈세와 범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폐를 없애면 탈세는 10~15%수준으로 감소해 세수가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직간접적인 범죄행위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또한 종이 지폐 폐지는 미국의 경우 골치거리인 불법 이민 문제 해결에 담장을 높이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다. 미국 고용주들이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 현금으로 불법 이민자들에게 지급하면서 값싸게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주장하는 지폐 폐지의 가장 중요한 부수적 효과는 경제적인 이유다.

저자는 인플레이션이 저금리에 갇혀 있는 상태이거나 심각한 경제 불황에 빠져 있는 상황일 때,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수요를 자극해야 하는 경우 지폐 폐지가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보다 원활하게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펄 수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현재 일본, 스웨덴, 스위스 등은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고 있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적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경기 변동성이 커지고 글로벌 저축률이 올라간 때문으로 낮은 금리의 채권보다 사람들이 지폐를 더 선호하는게 한 이유라는 것. 지폐를 폐지할 경우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게 로고프 교수의 판단이다.

저자는 현재 각국이 제로금리 한계의 덫에 빠졌다며, 이를 모래 벙커에 빠진 골프공에 비유한다. 살짝 골프공만 빼내려고 하면 공은 벙커ㅁㅁ서 빠져 나가지 못한다. 빼내려면 풀스윙을 해야만 한다. 일단 모래의 덫에서 빠져나오면 게임을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저자는 지난 수년간 단행된 양적완화의 주요 문제점은 중앙은행이 풀스윙을 꺼리고 살짝 공만 꺼내려 했다는데 있음을 지적한다. 일본의 경우 만약 장기간에 걸쳐 인플레이션을 허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면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은 보다 큰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마이너스 금리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들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방책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마이너스 금리로 소액권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가 생기는 경우 중앙은행에 지폐를 요구하는 은행들에게 수수료를 부담시키는 방법 등이다.

화폐폐지는 10년에서 15년에 걸쳐 점진적이고 느리게 진행하는게 바람직하다는게 저자의 입장이다. 개혁에 앞서 저소득층에게 현금카드와 기본적인 스마트폰을 제공하는 지원책은 필수. 일상에 흔히 쓰이는 소액권은 제외시킨다. 안전과 사생활 존중, 응급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소액권 역시 가벼운 동전으로 전환하도록 한다.

현금없는 사회가 먼 얘기만은 아니다. 스웨덴은 은행 지점들이 더 이상 현금과 현금자동지급기를 보유하고 있지않다. 스웨덴은 고액권 지폐인 1000크로나(13만990원) 권종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2013년 완전 폐지시켰다. 그 결과 지폐와 동전에 대한 수요도 2009년 1060크로나에서 2015년 770억 크로나로 급감했다. 2030년이면 효율적으로 화폐없는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새로운 금융시대의 서막은 열린 셈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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