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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왜? ①]코르셋부터 부르키니까지…여성 옷을 둘러싼 억압의 흑역사
[헤럴드경제=이수민 기자]비키니가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꼭 70년이 흘렀다. 하지만 비키니는 “야하다” “체제를 전복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숱한 오해(?)를 받으며 15년 동안 규제의 대상이었다. 1960~70년대 미니스커트를 퇴폐풍속으로 규정하고 단속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성의 옷은 알고보면 억압의 흑역사다. 코르셋부터 부르키니까지 무엇을 입어야 하는가, 혹은 입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압력은 수백 년을 이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촉발된 부르키니 규제 논란은 오랜 기간 여성 복식에 작용해 왔던 제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입어야 예뻐…코르셋ㆍ버슬= 키이라 나이틀리가 분한 ‘캐리비안의 해적’의 여걸 엘리자베스 스완은 코르셋에 한껏 조인 몸에 숨을 쉬지 못하다 정신을 잃고 성벽 아래 바다로 떨어져 내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는 개미 허리를 1인치라도 더 졸라 매느라 하인의 도움을 받으며 코르셋 안에 몸을 집어 넣는다.


‘코르셋’은 유행의 가면을 쓴 억압의 상징이었다. 16세기부터 유럽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한 ‘유행’으로 자리잡았지만 여기에는 사회가 강요한 여성미가 반영돼 있었다. 여성들은 가슴은 강조하고 허리는 잘록하게 조인 채 집 밖을 나서느라 스완처럼 호흡 곤란 증세를 겪거나, 갈비뼈 골절, 장기의 위치 변화ㆍ손상으로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조이는 대신, 최대한 부풀리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시기도 있었다. 허리받침대로 엉덩이 부분을 강조하며 17세기 유행을 선도한 ‘버슬’ 스타일은 18세기, 19세기에도 형태를 변형해 가며 인기를 끌었다. 철사와 고래뼈 등으로 만든 단단한 틀을 드레스 속에 넣어 끌고 다니며 여성들은 편안함과 자유로운 활동 대신 미의 기준을 따랐다.

▶이렇게 입지마…비키니와 미니스커트= 근현대에 이르러 사회적 기준에 벗어난 여성들의 복장은 공권력의 제재를 받기 시작했다. 2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올해로 탄생 70주년을 맞은 ‘비키니’ 또한 한 때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 옷으로 간주되며 착용이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노출이 심한데다 반체제적인 옷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1946년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드가 처음 선보여 시판된 후 몇 년 간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일부 해변에서는 비키니를 입을 수 없었다. NYT는 1957년 이탈리아 리미니 해변에서 경찰이 비키니를 입은 여성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싣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미니스커트 규제’가 같은 맥락이었다. 1960년대 말 유행을 탄 미니스커트는 길이가 점차 짧아지면서 무릎 위 15㎝까지만 허용되는 제재의 대상이 됐다. 자를 대고 무릎에서부터 스커트의 길이를 재는 경찰의 사진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제 이러한 감시의 눈은 몸을 가린 여성에게로 향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 경찰들이 무슬림 여성들의 부르키니를 강제로 벗게 하고, 과태료 부과 용지를 작성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퍼져 나가며 부르키니 규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최고 행정재판소인 국사원이 인권단체가 빌뇌브-루베 시의 부르키니 금지 조치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26일 금지 중단 결정을 내리면서 찬반 논란은 확산됐다. 사실상 관내 해수욕장에서 부르키니를 금지한 칸과 니스 시 등 30개 지방자치단체 전부에 대해 조치가 옳지 못하다는 판단을 제시한 것이다.

▶규제를 안 하면 여성 억압?…역설의 부르키니 규제 논란= 다만 부르키니는 그 자체로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이전의 여성 복식 규제와는 다른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다.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는 무슬림 복식이 반영된 수영복인 만큼 이를 보장하는 것이 여성 인권을 보장하는 길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부르키니에 대해 “여성 노예화의 상징”이라고 일갈했다.

반면 나자트 발로 벨카셈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부르키니 착용은 개인의 자유”라며 그것이 무엇이든 여성이 입고자 하는 것을 막는 것은 곧 억압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억지로 입게 해서, 혹은 억지로 못 입게 해서 여성을 억압했던 과거와 달리 부르키니에 대한 논란은 무엇이 진짜 여성 억압인가에 대한 논의부터 규제 찬반론자들의 이견이 팽팽하다.

/smstor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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