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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투의 화신’ 본 기상캐스터, “잘못된 편견 심어줄까 무서워”
[헤럴드경제=이은지 기자] 얼마 전 모 지상파 방송국 기상캐스터는 당혹스러운 일을 당했다. “기상캐스터들은 ‘엉덩이 뽕’이라는 걸 한다며?” 같은 방송국 아나운서가 건넨 말이었다. 과거 한 기상캐스터가 그런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드라마를 보고 하신 말씀이더라고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르고 보는 사람들은 거기 나오는 기상캐스터의 모습을 진짜라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더군요.”

해당 드라마는 지난 24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 ‘질투의 화신’이었다. ‘질투의 화신’에서는 아나운서를 꿈꾸면서 방송국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생계형 기상캐스터 표나리(공효진)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아나운서를 동경하는 기상캐스터의 설정과 더불어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를 대립해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다.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표나리는 1회에서 방송국 PD에게 “가슴은 좀 더 위로, 엉덩이는 더 빼고” 등의 성희롱적 발언을 듣는다. 표나리는 ‘엉덩이 뽕’을 착용하고 PD의 지시에 따라 몸매를 부각시키며 방송을 한다. 표나리는 방송국 사람들로부터 “야”라고 불리는 건 물론 아나운서의 의상을 챙기는 일부터 커피 심부름까지 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이에 기상캐스터 동료들이 “우린 날씨를 전하는 아나운서니 품위를 지켜달라”고 하자 표나리는 “우린 아나운서 아니잖아. 한 회에 7만 원 버는 기상캐스터잖아”라며 자조적으로 말한다. 지난 25일 방송된 2회에서는 “너 (기상캐스터) 선배들이 창피하니? 나도 내가 창피해”라고 후배에게 말하는 표나리의 모습이 그려졌다.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이에 모 지상파 방송국 기상캐스터는 “사실과 너무 달라서 헛웃음만 나왔다”며 “극적인 요소라고 생각하고 봤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의 이미지가 충분히 저렴하게 비치고, 하찮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캐릭터 설정 상 아나운서가 떨어지고 기상캐스터가 됐기 때문에 아나운서에 대한 동경이 있을 수는 있지만, 기상캐스터를 낮추는 발언이 반복되는 걸 보고 화가 났다”며 “대부분 기상캐스터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임하고 있고, 기상캐스터라는 직군만 바라보고 준비하는 후배들도 많은 게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엉덩이 뽕 등 외모와 관련된 부분도 “모두 오해”라고 했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기상캐스터가 대본을 보고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보도국 소속으로 직접 날씨기사를 쓰고 그 내용을 외워서 생방송에 임한다”며 “날씨 데이터를 보고 리포트를 만들고 외우는 일련의 작업들이 노동강도가 약하지 않아서 오히려 외모에 신경 쓸 시간도 없고 리포트 만드는 데 더 공을 들인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기상캐스터의 의상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의상도 차분히 입고 여성성을 강조하는 게 아닌 기자처럼 전문적인 느낌이 들도록 더 노력하는 추세”라며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 간의 차이는 분명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다. 그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보여주는 드라마고, 하필 그 안에서 아나운서과 기상캐스터를 고른 것 같다”며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 간의 미묘한 차별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지 오히려 같은 직군 간의 경쟁이 심해서 서로 다른 직군인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가 친한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잡심부름을 도맡아 하거나 표나리에게 반말을 일삼는 장면에 대해서는 “요즘 같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대우가 민감한 시기에 비교가 투박했다”며 “해당 드라마에 나오는 PD 개인 인성의 문제고, 표나리 본인이 자처해 잡일을 하는 모습이라고 해도 방송국 내에서 기상캐스터가 그럴 것이라고 일반화하는 것 같았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냥 넘기려 했지만, 극적인 요소라고 하기엔 “기상캐스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우려였다고 한다. “엉덩이 뽕처럼 외모를 부각시킨다거나 자신의 직업을 자기 스스로도, 또 주변 인물들도 비하하고 있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통해서 기상캐스터는 다 표나리같을 거라는 잘못된 편견을 심어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제작진이 어떤 해명을 하든 기상캐스터를 희화화하고 낮추는 설정 때문에 기상캐스터에게는 최악의 드라마”라고 비판했다. 특히 “해당 방송국 기상캐스터들이 제일 기분 나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특정 직군을 그리는 드라마인만큼 보다 신중했어야 했다”고 질타했다.

이에 ‘질투의 화신 제작진’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기상캐스터분들을 비하하려는 부분은 절대 없었다”며 “캐릭터가 극적으로 표현된 건 드라마이기 때문으로 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이어 “1회만 보시고 판단하지 마시고 여주인공이 앞으로 본인 직업인 기상캐스터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고 어떤 희로애락을 표현하게 될지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며 “혹여 비하한 걸로 보였다면 너무 죄송하다. 하지만, 그럴 의도는 절대 없다는 걸 앞으로 드라마를 보면 알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

leun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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