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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수경, “추억 팔이?… 무대가 너무 그리웠다”
[헤럴드경제=이은지 기자] “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는 상상을 했어요. 힘들거나 좌절할 때, 그걸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도 보컬 선생님이 항상 그러셨어요. ‘빨간 드레스 입고 무대 설 사람이 이렇게 노래하면 돼요?’ (웃음)”

모든 가요계 활동을 청산, 평범한 엄마로 돌아갔지만, 밤에 자동차 불빛만 봐도 설렜다. 무대 위 파란 조명이 참으로 그리웠다.

17년이 걸렸다. 2016년 8월 9일 KBS1 ‘콘서트 7080’ 녹화 현장, 가수 양수경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사진=오스카이엔티 제공]

“제발 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갔어요. 20년 만에 나왔는데, 우는 모습 보여주기 싫었어요. 그런데 눈을 떴더니 앞에서 팬들이 울고 있더라고요.” 이날 양수경은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양수경을 만났다. 양수경은 지난 9일 미니 앨범으로 컴백, 신곡 ‘사랑 바보’를 비롯 1989년 발매한 히트곡 ‘사랑은 창 밖에 빗물 같아요’를 다시 불렀다.

“그때는 제가 아이돌이었는데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렸네요.” 양수경은 1988년 ‘바라볼 수 없는 그대’로 정식 데뷔, 이듬해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한류라는 단어가 생소했을 그 당시, 일본, 동남아, 러시아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상을 품에 안았다.

‘원조 디바’라는 말이 붙을 만큼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당시에는 그 소중함을 몰랐다”고 했다. “그때는 왜 몰랐는지 모르겠어요. 그만두니 알겠더라고요.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노래가 정말 부르고 싶었어요.”

양수경은 1998년 소속사 ‘예당’의 대표 변대윤 씨와 결혼을 하면서 돌연 연예계를 떠났다. 그 후 뜻밖의 비보를 알려왔다. 2009년 여동생이, 2013년에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루머가 많았지만 양수경은 한 번도 해명하지 않았다. “말을 안 하던 사람이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해가 더 커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때만 기다렸죠.” 이날도 해명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고백이 뒤따랐다. “여동생은 제 분신 같은 아이였어요. 동생이 떠나면서 선물을 두고 갔더라고요. 제가 낳은 아이와 동생이 남기고 간 두 아이를 입양해서 지금까지 제 아이의 엄마로 살았어요.”

정상에서 내려와 세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노래에 대한 갈증은 그 무엇으로도 해갈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저한테 노래는 산소 같은 거더라고요. 엄마로 충실하게 살았지만, 노래를 못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항상 마음 한편에는 가수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노래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있더라고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마음 아픈 이별이 몇 번 있었고, 그래서 늦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아픈 시간들이 지금 나한테 모여져서 노래할 수 있는 용기, 해야 하는 의미, 그런 게 생긴 것 같아요.”

용기는 냈지만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 그런 가수가 있었다고 추억 속에 살 수도 있는 건데 괜히 다시 나와서 옛날에 이뤄놓은 걸 망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요.” 힘이 돼준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첫 시작은 현 소속사 대표의 한 마디였다. “‘나는 추억 팔이 하는 가수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여길 택한 이유예요."

시작은 힘찼지만,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양수경은 14kg을 감량, 보컬 트레이너와 함께 맹훈련에 돌입했다. “녹음 할때도 끝음 하나까지 혼신을 다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가장 듣기 좋은 말은 “목소리 그대로에요”라고 했다. “물론 여자니까 예쁘다는 말이 기분이 좋긴 하죠. 그래도 그 말이 제일 듣기 좋아요.”

어둠을 깨고 나온 세상, 낯설 줄만 알았지만, 그 곳엔 자신을 오랫동안 기다려 준 팬들이 있었다. “어렸을 땐 몰랐죠. 어딜가나 팬들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저를 기다려주셨더라고요. 감사했어요. ‘콘서트 7080’ 녹화때도 다 저희 팬카페 분들이 와서 앉아있었어요. 슬퍼서 울었던 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울었어요. 팬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따뜻함, 그리고 셀렘이예요. 아 그거 아세요? 저 젊은 팬들도 많이 생겼어요. (웃음)”

인생 제2막, 양수경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인생이 0부터 100까지라면 아직 50도 안온 것 같아요.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콘서트랑 디너쇼도 하고 정말 나한테 허락된다면 노래로 누군가한테 힘이 될 수 있는 흔히 말하는 봉사를 하고 싶어요. 저한테 그런 때가 오게 된다면,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원조 디바’, ‘여왕’의 귀환. 저를 수식하는 말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냥 가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가수 양수경.”

leun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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