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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과학] 말문 닫은 기상청이 부족한 두 가지




[HOOC=이정아 기자] 지구온난화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날씨에 최첨단 기상관측 장비를 보유한 미국 기상청도 속수무책으로 오보를 냈습니다. 지난 1월, 미국 기상청은 2월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에 엘니뇨 현상에 따른 폭풍우가 덮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예보했지만 이는 완전히 빗나갔죠.

이후 우주항공국(NASA) 산하 제트추진연구소(JPL)의 빌 패처트 기후학자도 LA타임즈의 보도(2월9일)를 통해 “늦춰지긴 했지만, 본격적인 엘니뇨가 시작될 것”이라며 2월 말∼3월 초 평년 이상의 강우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보로 판명됐습니다.

올해 여름은 전 세계적으로 기상관측을 시작한 1880년 이후 가장 무더웠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겨울은 유난히 춥고, 여름엔 몇십 년 만에 찾아오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봄과 가을은 짧아졌죠. 날씨 패턴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렇다 보니 ‘기상청 예보를 보느니 하늘을 보겠다’는 비난이 거센데요. 앞서 미국 사례에서도 보듯이 우리나라 기상청만이 ‘오보청’이라는 지적을 받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쯤 되니 의문이 생겼습니다. 세계 최첨단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는 선진국도 기상청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비판을 받는데 말입니다. 과연 자연이라는 변수를 인간이 수학적 계산으로 정복할 수 있는 것일까요, 기상청은 기상 예측의 오차를 지금보다 더 최소화할 수 있는 걸까요?

기상청이 폭염 종료일을 여러 차례 수정하면서 “기상청이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100% 확실한 날씨 예측이 어려운 이유

지형, 온도, 습도, 기압, 바람, 구름의 양…. 기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기 중의 변수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수를 고려해 기상 데이터를 잘 측정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걸 예상하는 ‘완벽한 방정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래서 북경의 나비 날개에 의한 파동의 전파 같은 변수까지 감안이 되지 않으면, 아니 감안을 하더라도, 기상을 100% 예측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기상청 직원들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고, 예보관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기상청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하지만 기자에게 돌아온 대답은 간결했습니다.

“기상청을 비판하는 기사가 하도 많아서 이제 더 이상 취재에 응하고 싶지 않습니다. 취재 요청은 거절할게요. 원래는 인터뷰하려고 했는데 오늘도 아침부터도 기상청 비판하는 기사가 몇 개나 나왔어요.”

다시 질문을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해명을 해주시면 되잖아요. 세계 꿀리지 않는 슈퍼컴퓨터를 쓰고, 그 안에 돌리는 프로그램인 모듈도 유럽에서 많이 쓰는, 최고 사양이잖아요. 이렇게 최첨단 장비가 있어도 예측이 어려운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자연 속 수많은 기상 변수 중에 어떤 게 가장 골칫거리던가요?”

하지만 계속해서 돌아온 대답은 “더 이상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였습니다. 기상청이 왜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는지, 해명을 할 의지가 있긴 한 건지 오히려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공식적인 취재 요청 루트가 아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기상청 직원 A 씨와 기상예보 전문가 B 씨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간단하게 정리하면, 우리나라 기상청에는 정확한 기상 예보를 위한 ‘두 가지’가 부족합니다. 

기상청 슈퍼컴퓨터. 550억원 짜리 슈퍼컴퓨터를 쓰더라도 기상을 최종 예측하는데 있어서 컴퓨터의 비중은 40% 정도다.


두 가지가 없다: 데이터, 예보관의 경험

기상청에 있는 슈퍼컴퓨터 순위는 올해 6월 기준 전 세계 30위권대입니다.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디 내놓아서 밀릴 만한 순위는 아닙니다.

문제는 슈퍼컴퓨터의 모듈에서 돌리는 데이터가 정확하게 측정된 기상 값이 아니라는 것이죠. 아주 미세한 차이의 오차라도 이 값을 모듈에 넣고,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돌리면, 그 오차는 점점 커집니다. 정확한 기상 데이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기상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기상 장비인데요. 이런 장비들이 노후화 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기상장비 오작동만 1512건에 달합니다. 하루에 한번 꼴로 장비가 고장난 겁니다. 게다가 지난달 말 기준으로 기상레이더 10대 중 3대가 내구연한이 초과됐습니다. 기상레이더의 장애일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요. 올해 7월 말 기준으로 이미 장애일 수가 43일이나 됩니다. 예년의 1년 치 장애일 수를 넘어선 수치입니다.

이렇다 보니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왜 기상장비를 제대로 검수하지 않았냐, 왜 장비를 투명하게 도입하지 않냐….’ 같은 지적들이 나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슈퍼컴퓨터가 분석한 여러 가지 기상 시나리오를 보고 날씨를 최종 예측하는 사람들은 예보관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2~3년 만에 바뀝니다. 순환보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상청 관계자 A 씨는 “예보관이 되면 자주 밤을 새고 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예보관들이 부서 이동을 원하게 된다고 전하는데요.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0년 정도는 그 일을 해야 한다 말도 있는데 2년 만에 전문성을 요구하는 건 어렵겠다는 판단이 듭니다.

새누리당 주영순 전 의원에 따르면, 2012년 비오는 날 예보 정확도는 52%였다가 2년 뒤 27.9%까지 떨어졌습니다. 로버트 매튜스라는 과학자의 주장대로라면 1년 내내 우리나라의 날씨가 맑다고만 예보해도 정확도는 70%로 측정되는데 말이죠.

좋은 기상 데이터를 수집하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기상청 직원들의 노고를 비하하려는 게 아닙니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변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요. 하지만 올해 기상청 예산은 4000억 원이 넘습니다. 자연의 변수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기 위해 만든 조직이 기상청이라면, 데이터를 관측하는 기상 장비가 업그레이드 되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예보관들의 전문적인 경험이 뒷받침돼야하지 않을까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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