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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에세이] 느리지만 정직한 곳…예지동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포토에세이 고장난 시계 척척 -70년대 풍경 그대로…종로 5가 시계골목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영화 ‘감시자들’에서 최고의 ‘골목 추격신’의 무대가 됐던 서울 종로구 예지동 시계골목, 제임스(정우성)가 청계천 모전교에서 도망친 후 접어든 좁고 어두운 골목이다. 어리버리 성격의 신참 하 형사(한효주)와 황 반장(설경구)이 무선으로 교신을 주고받으며 제임스를 추격하는 장면은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면서 관객으로부터 “이 골목은 어딜까”하는 궁금증을 낳곤 한다. 

이 곳은 크고 작은 시계방이 좌우로 도열해 있는 곳이다. 거리에 진열된 낡은 시계들과 색이 바랜 간판들이 옹기종기모여있는 곳. 서울 도심 한복판이지만 시간에 버림받은 듯, 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도심 세파에 찌들기 싫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고, 덕분에 영화 단골 무대가 됐다.

골목을 걷다 보면 영신사란 간판이 보인다. 스스로해방둥이라고 말하는 박종현(71세) 씨는 붉은 빛의 전구 아래‘ 기스미’라 불리는 시계 수리용 렌즈를 한쪽 눈에 붙이고 수리를 한다. 기스미는 그와 45년을 함께 해온 물건이다.

이곳엔 고장 난 시계와 매일 눈 맞추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1960년대 청계천변 상인들이 옮겨오면서 사과궤짝 위에 시계를 고무줄에 묶어 진열해 놓고 팔던 게 시초라고 한다. 이후 상점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1970~80년대 혼수 마련을 위해 꼭 들러야 하는 장소가 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고치지 못하는 기계식 시계는 없는 곳”이란 명성도 얻었다.

가판대마다 즐비한 여러 종류의 시계를 만날 수 있다. 여기는 참 특별한 공간이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등장은 이 골목에 경제적 타격을 가했다. 명품, 예물 상권이 백화점으로 이동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이곳이 한산해진 결정적 계기는 재개발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2006년 도시정비구역상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이후였다. 많은 상인들이 인근 세운스퀘어로 옮겨 가거나 가게 문을 닫았다. 이곳에 120m 높이의 빌딩을 짓는다는 계획이 세워졌지만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경관을 훼손한다”는 지적으로 무산되는 등 몸살을 앓기도 한 곳이다.

오래된 벽시계를 걸어놓은 한미사 함영기 대표는 특수시계를 제작하는 장인이다. “명동성당의 큰 시계 리모델링을 내가 했다”고 자랑한다.

떠날 사람은 떠났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여기엔 시간의 정직함을 아는 장인들만 남았다. 

서울 종로구 예지동 시계골목은 200여m 남짓한 거리에 시계와 관련된 각종 점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몇천원짜리 중국산 시계부터 1000만원 넘는 스위스 시계까지 구경할 수 있다.

45년 경력의 박종현(70세) 씨는 2평쯤 되는 가게의 붉은빛의 전구 아래서 ‘기스미’라 불리는 시계 수리용 렌즈를 한쪽 눈에 붙이고 수리를 하고 있었다. 기스미는 그와 45년을 함께 해온 물건이다. “어떤 시계여도 선물 받거나 사연이 있으면 버릴 수 없어, 돈으로 가치가 없어도 말이야. 그래서 수십년 넘은 예물 시계를 고치러 오는 사람이 있어, 수리비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거기엔 추억도 있고, 인생도 있으니까“라는 그의 말이 정겹다. 

광장시장 맞은편에 있는 시계골목은 바늘을 한참 뒤로 돌린 듯 옛 풍경들이 펼쳐진다.

요즘은 시계의 오버홀(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를 완전 분해해 점검ㆍ세척하고 작은 부품들이 마모없이 잘 작동하도록 윤활유를 넣는 과정ㆍ통상적 오버홀 주기는 5~6년) 서비스와 복원 의뢰를 하러 외국사람들도 찾아온다. 예지동 장인의 손길을 믿기 때문이다.

의사가 수술하듯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여기는 수리가 안되는 게 없고 시계에 관한 문제는 웬만한 건 다 해결된다”고 자신했다.

이곳에 남은 이들은 국내시계 산업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을 잊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꾸 옛 것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 서울시가 골목 보존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이곳 장인들의 희망이다.

수리를 마치면 날짜와 사인을 시계 뒤에 꼭 적는다.

종로5가 시계골목의 초침은 오늘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사진ㆍ글=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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