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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정말 ‘노오력’이 부족한가요? ①] “내 직군 아닌데”…‘영업’ 강요 당하는 신입사원들
-영업직군 아닌데도 입사하면 무조건 “영업 성적 내라” 압박

-일부에서는 대학생 상대 단기 인턴 모집해 영업 강요하기도

-“취업시장에서 ‘乙’ 된 신입사원에게 영업 전가는 부당” 의견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지난해 한 금융사에 입사한 김모(27) 씨는 얼마 전 대학 후배들을 찾아 동아리방에 갔다. 은행에서 김 씨에게 통장 50개를 할당했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며 김 씨는 어렵게 통장 얘기를 꺼냈다. 졸업한 선배의 민망한 부탁에 4명이 통장 개설을 약속했다. 김 씨는 “입사와 동시에 통장 할당이 들어와 가족은 물론 친척까지 모두 부탁한 상태”라며 “다급하다 보니 후배들에게 부탁했지만 이제 학교에 올 수 없겠다”고 했다. 그는 “창구나 영업이 아닌 직군까지 할당이 내려와 퇴사한 동기도 많다”고 했다.

취업시장이 어렵다보니 신입사원이 취직을 해도 해당 업무가 아닌데도 영업을 강요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고 있다. 오늘날 젊은층의 각박한 삶을 대변한다. 사진은 신입사원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비단 은행 뿐만 아니라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영업 강요가 만연한 상황이다. 영업 직군이 아닌 사원에게도 강제적으로 영업 할당을 내리는 경우 뿐만 아니라 단기 인턴에게 영업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퇴사하는 신입사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 가구회사에 다니는 이모(28ㆍ여) 씨는 마케팅 직군으로 입사했지만 입사 후 6개월 동안 대리점에서 직접 영업을 뛰어야 했다. 입사 직후 모든 신입사원이 직군에 상관없이 영업을 뛰어야 한다는 회사의 공고에 신입사원 대부분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 불만을 얘기했다가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이 씨를 비롯한 신입사원들은 전국 대리점에 파견돼 영업을 뛰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부탁해 실적을 채우는 신입사원이 많았다. 이 씨는 “배운 것도 없이 무작정 대리점에 보내고 할당을 채우라고 강요했다”며 “아는 게 없으니 일단 가족이나 친지한테 부탁해 실적을 채워야 했다”고 했다.

어렵게 취직을 했는데, 회사가 영업을 강요하면서 ‘을(乙)’의 서러움을 당하는 신입사원이 늘고 있다. 결코 ‘노력’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청년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평가다. 사진은 갑을 이미지.

최근에는 신입사원 뿐만 아니라 단기 인턴에게도 영업을 시키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 생명보험 회사는 최근 대학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융전문가’라는 이름의 인턴직원을 모집했다. 금융 실무를 가르치면서 채용에 가산점을 준다는 공고에 많은 대학생이 몰렸다. 그러나 막상 첫 출근을 하자 실무 교육보다 보험 영업을 강요했다. 인턴 과정에 참여했던 유모(26) 씨는 “회사가 실무 평가란 이름으로 보험을 팔아야만 채용에 가산점을 준다 했다”며 “어렵게 얻은 기회라 주변 지인들에게 보험에 가입해달라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신입사원에 대한 영업 강요가 심해지면서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떠나는 신입사원이 적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2016년 신입사원 채용 실태 조사’에서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에 달했다. 지난 2014년(25.2%)보다 2.5%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특히 1년 내 퇴직한 신입사원의 49.1%는 “생각했던 직무와 맞지 않아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답했다.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이른바 ‘청년수당’을 놓고 싸우는 사이 취업 준비생과 사회 초년생은 여전히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재취업 시장에 뛰어든 초년생들을 보조할 제도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1년차 직장인인 하모(29) 씨는 “취업이 안된 동생도 이번에 청년수당을 못받고 어렵게 아르바이트 중인데, 나까지 그만둘 수 있겠느냐”며 “맞지 않는 영업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회사에 나오면 또 취업 활동과 생업에 뛰어들어야 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신입사원에 대한 영업 할당이 만연해진 배경에는 어려워진 취업 시장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어려워진 취업 시장에서 ‘을(乙)’이 된 신입사원들에게 회사가 영업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호 노무사는 “신입사원들이 어렵게 취업하면서 회사가 부당한 일을 시켜도 쉽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가 이를 악용해 실적 부담을 신입사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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