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양준모 “레미제라블은 내 인생의 뮤지컬”
日 ‘레미제라블’ 30주년 공연서 장발장役… ‘지킬앤하이드’ ‘영웅’ 등서 주역… “남은작품 ‘맨 오브 라만차’는 나이들면 도전”



뮤지컬 배우들에게는 ‘인생 뮤지컬’로 불리는 대표작들이 있다. 조승우의 ‘지킬앤하이드’가 그렇고, 정성화의 ‘영웅’이 그렇다.

양준모(36)는 이 두 작품에서 모두 주역을 연기했다. 그는 ‘명성황후’(2006), ‘스위니토드’(2006), ‘바람의 나라’(2009), ‘오페라의 유령’(2009~2011), ‘영웅’(2010~2011), ‘삼총사’(2011), ‘서편제’(2012), ‘지킬 앤 하이드’(2012~2013), ‘베르테르’(2013), ‘드라큘라’(2014), ‘레미제라블’(2015~2016), 그리고 올해 재연된 ‘스위니토드’까지, 국내 대표적인 뮤지컬 작품들의 주역을 모두 거쳤다. 맨 앞에 내세워지지는 않지만 늘 있었던 배우, 어떤 작품에서 만나도 믿고 볼 만한 배우가 양준모다.

오페라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일본 ‘레미제라블’ 30주년 기념 무대에 선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로, 또 다시 ‘장발장’ 역을 맡게 됐다. 

초연 때는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 상태에서 오디션을 봤고, 연습을 시작하기 전 6개월동안은 두문불출하며 매일같이 북한산에 올랐다. 상대 배역 대사까지 모든 일본어 대사를 통째로 외워버렸다. 결과는 ‘진정으로 하느님과 교류하는 장발장’이라는 현지 언론의 극찬으로 이어졌다.

중저음이 매력적인 양준모를 4일 서울 성수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미 한번 언어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고 무섭게 몰입했던 작품이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한국어 버전보다 일본어 버전이 노래하기에 더 쉽다”고 말할 정도다.

▶일본은 왜 한국의 장발장을 선택했나=“세계 어디에서도 한 작품을 그렇게 오랫동안 올린 곳은 없어요. 일본 배우들 얘기를 들어보니 어릴 때부터 이 작품을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하더라고요. 레미제라블을 한다는 건 그들에게는 꿈을 이룬다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열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죠.”

일본에서 ‘레미제라블’은 거의 2년에 한번씩 30년 동안 공연된 작품이다. 그만큼 일본 관객들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일본인이 사랑하는 ‘레미제라블’에 한국 배우 양준모가 서게 된 건 2013년 12월 뮤지컬 ‘렌트’의 주인공 아담 파스칼의 일본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초청된 게 계기가 됐다. 일본 공연 관계자가 그를 눈여겨 봤고 먼저 오디션을 제안했다. 세계적인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의 작품들이 모두 그렇듯, 그 역시 매킨토시의 최종 낙점을 받고 일본 무대에 서게 됐다.

‘하느님과 교류하는 장발장’이란 호평은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인 덕분이기도 하다. 그의 부모님은 선교사다.

“일본에는 크리스천이 전체 인구의 1% 밖에 안된다고 해요. 레미제라블은 다분히 성경적인 작품인데, 그동안 신을 잘 알고 연기하는 장발장이 많지 않았던 거죠. 일본 배우들이 성호 긋는 법, 성경책 드는 법을 물어볼 정도였어요.”

모태신앙이었지만 가족의 일원을 잃는 불의의 일들을 겪으면서 “한때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던” 경험이 장발장의 기나긴 삶의 여정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런 그에게서 ‘천생 장발장’을 발견하게 됐다.

그가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는 ‘사랑’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 역시 맨 마지막에 나오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을 보리(To love another person is to see the face of God)’다. 그는 이 가사가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레미제라블을 보시고는 ‘진짜 착하게 살아야겠다’ 하시더라고요. 평생 희생하며 선하게 살아오신 분인데, 그런 분마저도 더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인생뮤지컬은 레미제라블…선한 마음 갖게 해”=현재 양준모는 올해 최고 화제작 ‘스위니토드’에서도 조승우와 함께 주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애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에게 성악적인 요소가 많은 이 작품 역시 몸에 꼭 맞는 옷이다.

“스위니토드는 현대오페라와 비슷한 작품이에요. 미국이나 유럽의 메이저 오페라 그룹에서는 이 레퍼토리를 종종 무대에 올리죠. 그만큼 성악가들이 해도 어려운 작품이고요. 그렇지만 음악 분석만 충실하게 잘 하면 연기적인 부분은 왠만큼 음악에 기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해요.”

9년 전 초연 때도 했던 작품이지만 그 때와는 작품의 결도 다르고, 흥행 점수도 다르다. 이번에는 소위 ‘대박’을 쳤다.

“초연 때는 좀 더 다크하고 그로테스크했어요. 죽는 연기를 할 때는 모터가 연결된 파이프에서 피가 솟구쳤죠. 1막 보고 그냥 가는 분들도 계셨어요.”

올해 스위니토드는 훨씬 밝아졌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복수극은 그대로지만, 한국식 유머가 곳곳에 삽입돼 웃음을 유발한다.

“연출가 에릭 셰퍼는 손드하임 전문가잖아요. 이렇게도 밝게 할 수 있다는 게 신선했어요. 간혹 무대에 불만을 갖는 관객분들도 계신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미니멀한 무대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을 할 수 있어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작품 역시 ‘스위니토드’였다. 그러나 정작 인생 뮤지컬로는 ‘레미제라블’을 꼽았다. 다분히 마초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스핏파이어그릴’, ‘내마음의풍금’ 같은, 따뜻하고 가족적인 작품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이다.

“20대 때 스위니토드를 했어요. 날카로운 작품을 하니 제 성격도 날카로워지더라고요. 오래도록 인생뮤지컬이 될 작품은 아마도 레미제라블인 것 같아요. 작품을 하는 동안 제 마음이 선해지는 걸 느끼게 해 주니까요.”

▶“남은 작품은 맨 오브 라만차…나이 더 들면 하고 싶어”=양준모는 2004년 ‘금강’으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평양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뮤지컬의 힘을 봤다.

“북한 사람들은 미동도 없이 정자세로 공연을 볼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공연 내내 웃고 울고 객석이 난리더라고요. 어떻게 공연했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관객들의 표정만큼은 지금도 생생해요. 한국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결심했어요. 뮤지컬을 해야겠다. 그날부터 다니던 대학원도 관두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

오페라에서 뮤지컬로 ‘전향’한 그지만 뮤지컬 관객들을 오페라로 데려가고 싶은 욕심은 여전하다. 오페라 ‘리타’의 프로듀싱을 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올해 10월 충무아트홀에서 재연할 예정이다. 뮤지컬 배우 전미도가 드라마트루기를 맡고, 이지혜 작곡가가 번안, 감수를 맡았다.

그는 “오페라 시장을 대중적으로 개방하려면 희생하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페라에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번안할 것은 번안하고, 변화할 것은 변화하자는 생각이다.

“뮤지컬 팬들이 오페라도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미국에서는 브로드웨이와 메트(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를 오가는 게 자연스러운데 우리는 아직 그렇지 않으니까요.”

뮤지컬을 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6년째 오페라 레슨을 받고 있다는 그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오가며 ‘현재진행형’ 꿈을 꾸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작품, 캐릭터는 다 했다”는 그에게도 아직 해 보지 못한 작품이 있다.

“이제 남은 게 ‘맨오브라만차’예요. 그런데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아요.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도전하려고요.”

그는 맨오브라만차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을 꼽았다. 돈키호테 역만큼은 더 나이 들어서 하고 싶다는 꿈이야말로 ‘이룰 수 없는 꿈’일 것 같다. 팬들이 그를 곧 라만차의 무대로 불러낼테니.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사진제공=굿맨스토리]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