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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대 아저씨는 왜 생일 선물로 게임기를 샀나?
<이 기사는 35세 생일을 맞아 게임기를 산 기자의 구입기입니다. 해당 업체로부터는 10원짜리 하나 받지 않았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또 기사에 다소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아내 분들의 일독을 권하지 않습니다>

[HOOC=서상범 기자]늦은 밤. 퇴근한 중년 남성이 택시를 탄다. 택시에 앉자마자 남성은 잠에 빠진다. 이윽고 목적지에 내린 남성. 그런데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20여년 전 대학을 다닐 때 친구의 집이었던 것.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 때로 돌아가 대학생 모습을 하고 있는 친구들. 무슨 일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중년 남성에게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그거’ 가져왔냐고 묻는다. 
코나미의 대표게임 위닝일레븐 20주년 광고의 모습. 중년 남성이 된 주인공이 20년전 과거로 돌아가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유튜브]

친구들이 기다린 것은 위닝 일레븐 4(코나미사의 전설적인 축구게임). 그렇다. 남성은 1999년으로 돌아간 것이다.

어리둥절하던 남성에게 친구들은 “뭐하는 거냐”며 자리에 앉아 게임을 권한다. 그렇게 쭈뼛쭈뼛하던 남성 역시 이내 화면에 빠져들어갈 것처럼 한 골 한 골에 환호한다. 마치 게임 속 축구 영웅들에 빙의된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에 이웃들은 무슨 일인가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다시 택시로 돌아온 남성. 그렇다. 꿈이었던 것. 이윽고 현실의 집으로 들어선 남성은 그러나, 곧장 잠에 빠지지 않고 거실 TV를 켜고 위닝 일레븐을 한다. 밤새 게임을 한 그. 전화기를 통해 꿈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말한다. “오랫만에...할까?”
위닝일레븐 4의 게임 실행화면. 지금보면 조잡하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게임 그래픽이었다 [사진=유튜브 캡쳐]

위 내용은 최근 위닝 일레븐 20주년을 맞아 코나미에서 만든 광고 영상입니다. 위닝 일레븐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거친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그야말로 ‘미쳤던’ 게임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플스) 대중화의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죠.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광고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전국 위닝 마니아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저 또한 대학교 시절 친구들과 플스방(플레이스테이션방)에서 함성을 지르며 밤새 게임을 하던 추억에 울컥해버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올해로 35세 생일을 맞은 기자는 “생일 선물로 뭘 원하냐”는 아내의 질문에 고민 끝에 ‘플스’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저의 대답에 와이프는 ‘우리집 큰 아들이 드디어 정신을 잃었구나’라는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굴하지 않았죠. 결국 저의 고집에 와이프는 항복했고, 저는 지난 7월 29일 게이머들의 성지(聖地) 용산 전자상가로 향했습니다. 
플스4를 구입하기 위해 방문했던 용산 전자상가. 잔뜩 흐린 날씨였지만, 기자의 마음의 눈에는 새파랗게 맑게 보였다

아직도 저는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용산 전자상가에 주차하고 바라본 하늘은 분명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흐렸지만, 제 눈에는 너무나 샛파랗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죠.

주차장 바로 옆 게임 전문 상가로 향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이 좋다. 용산 전자상가 상인들의 현란한 호객 행위와 상술은 너와 같은 호갱님(호구+고객님)들의 영혼까지 털어갈 것이다”고 만류했지만, 제 손으로 직접 플스를 구입하는 그 감동의 순간을 느끼고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용산전자상가 내 게임 전문 업체들이 모여있는 곳. 무언가 탐험을 떠나야 할 던전처럼 보이지만, 겁먹을 것 없다.

뭔가 프로페셔널하게 보이고 싶어 일단 상가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어떤 게임 보러 왔냐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제 귀를 간지럽혔지만,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며 간절한 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주변 탐색을 마친 후.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눈에 들어왔던 한 가게를 들어갔습니다. 공대를 졸업했을 것 같은 순박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의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였습니다.

“어떤 거 찾으세요?” 사장님이 물었습니다. 무심하게 저는 “플스요”라고 답하며 “얼마까지 해주실 수 있어요?”라며 선공을 던졌습니다. 마치 “나는 이 바닥에 대해 다 안다. 그러니 나를 ‘호갱’ 취급 하지말라”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장님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인터넷에 최저가 다 알아보고 오셨잖아요. 맞춰서 드릴게요!^^”
용산 상가에서 구입한 플스4와 패드. 그리고 게임팩. 이정도 갖추는데 드는 비용은 온라인 최저가보다 저렴했다

순간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마치 이 곳을 ‘던전급’의 위험한 곳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온라인의 바람은 용산 전자상가 특유의 그 무엇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싱거운(?) 흥정이 끝나자 사장님은 플스가 담긴 상자로 절 안내했고, 저에게 이 중 하나를 뽑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장님은 “간혹 불량 물건을 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는 손님들이 있어, 아예 손님들이 스스로 뽑을 것을 권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불신이 만연한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도 있었지만, 일종의 놀이를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선택한 것은 흰색 500기가 플스4. 그 다음 프로세스인 게임팩 구매를 할 차례였는데요. 우리의 사장님은 “게임팩을 구매해도 되는데, 요즘은 온라인에서 다운을 받는다”고 귀띔을 하시더군요. 
소니의 공식 사이트 PSN에서 1년치 이용권을 구입했다. 이정도면 어지간한 게임은 무료로 이용가능하다.

순간 “온라인 다운은 불법 아닌가요?”라고 반문하자 사장님은 “시대가 변했다”고 답했습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공식 사이트인 PSN에서 돈을 내면 원하는 게임을 즉시 다운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1년 회원권을 끊으면 어지간한 게임은 무료로 할 수 있고, 매달 인기 게임을 무료로 배포하는 이벤트도 열린다고 하더군요.

때문에 사장님의 근심도 깊어진다고 합니다. 온라인 단가를 맞출 수가 없어 신작 게임팩으로 이문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이야기를 나눌수록 발전한 온라인 기술로 인해 오프라인 가게들이 겪는 어려움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역시 시디를 넣고 기다리는 기분을 느껴야죠. 저는 2개의 게임팩을 구매했습니다.

다음은 게임 패드를 구입할 차례. 플스4는 기본으로 패드를 하나 주는데요. 2인 대전 게임을 하려면 하나를 더 구입해야 합니다.이 역시 온라인 가격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필요한 모든 것을 구입한 후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빈 플스 상자들이었습니다. 소중하게 본체를 담아가야 할 상자가 왜 가게에 뒹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누군가는 빈 박스를 가게에 버리고 몰래 플스를 소유하지만, 기자는 당당하게 집안 거실에 플스 패키지를 진열했다

이에 대해 사장님은 “너의 궁금함을 알아차렸다”라는 듯이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거, 아저씨들이 다 남기고 간거에요. 와이프 몰래 사는 분들이 박스는 여기에 버리고 본체만 가방에 넣어 가시더라구요”

순간 저는 플스 구입을 공식적으로 허락해 준 아내에게 깊은 감사와 함께, 소중한 플스를 몰래 가져가야만 했던 그 분들에게 말할 수 없는 애잔함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같은 30대 아저씨들은 정말 플스를 많이 구입하는 걸까요? 사장님은 “플스 손님 대부분이 30대 초반~후반 남성들”이라며 “수십만원에 달하는 게임기를 10대나 20대들이 선뜻 사기는 어렵지만, 30대 남자들은 오랜 꿈을 이룬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와서 행복한 얼굴로 돌아간다”고 말하더군요. 
"내가 세상의 왕이다" 영화 타이타닉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못지 않은 기분이었다 [사진=네이버 영화]

저 역시 상가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을 느꼈습니다.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외친 그 느낌이었죠.

집으로 와서 부속품을 꺼내고 TV와 연결을 하며 첫 화면이 떳을 때는 심장이 멎어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머리 뒤로 아내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말 내내 저는 플스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누군가가 물어봤습니다. 생일 선물로 플스를 산 것을 후회하지 않냐고.저는 답합니다.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던 플스를 이제 미약하지만 내가 번 돈(정확히는 아내의 허락이지만요)으로 당당하게 소유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키덜트가 왜 생기는 지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또 게임을 하는 순간이나마 20대의 그 느낌. 철없고 풋풋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아 나는 행복하다고.

한편 플스는 지금 HOOC 사무실에 있습니다. 직원들의 복지와 사기 진작을 위해 주중에는 사무실에, 주말에는 다시 집으로 이동을 반복할 예정입니다.

제가 이 게임기를 생일 선물로 정한 이유 중 하나가 집에서 혼자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소리지르고, 흥분을 공유하기 위해서기 때문입니다. 
플스가 TV와 연결되던 순간. 기자 또한 20년 전 그 세상과 연결됐다

전국에 계신 위닝 일레븐 능력자 여러분. 용산구 후암동 HOOC 사무실로 오셔서 꼭 한 판 나눌 수 있으면 합니다.

그리고 30대 위닝 일레븐 키즈 동지들. 이번 생일에는 꼭 자신을 위한 선물로 한 번은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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