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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진의 무비QnA] 기획영화의 딜레마, 영리함과 한계 사이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장마 뒤 물줄기가 불어나듯, 여름방학 시즌 극장을 찾는 관객도 급증한다. 성수기 하루 관객수는 비수기와 비교해 10배 가까이나 된다. 천만 영화도 대부분 여름에 나온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작은 영화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했다면, 이제는 큰 제작비의 야심찬 영화들이 ‘제대로 한 방 터뜨릴’ 기세로 등판하는 시기다.

올여름 ‘빅4’로 꼽힌 여름 라인업 ‘부산행’(NEW), ‘인천상륙작전’(CJ), ‘덕혜옹주’(롯데), ‘터널’(쇼박스)은 모두 ‘기획영화’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100억원이 훌쩍 넘는 대규모 제작비, 스타 캐스팅, 초기 단계부터 흥행을 목표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등이 기획영화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예술작품’이라기보단 프로듀서와 기획팀 중심으로 아이템을 잡아 만드는 ‘상업작품’에 가깝다.

최근 극장에 걸린 기획영화 두 편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최종 흥행 스코어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분위기로 ‘부산행’은 “관객 마음을 저격했다”는 호평, ‘인천상륙작전’은 “기획영화의 한계”라는 혹평이다.


‘부산행’은 개봉 10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첫 천만 영화 탄생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사이비’, ‘돼지의 꿈’ 등 사회고발성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온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로도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고 국내에서 첫 상업영화로 시도되는 ‘좀비’소재에, 섣불리 흥행을 점치는 이가 드물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5월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상영된 후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국내외 언론들은 ‘부산행’ 흥행을 예감하기 시작했다. 칸 필름마켓에서의 판매를 포함해 전세계 156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8월부터 차례대로 북미, 아시아, 유럽 등에서 극장 개봉될 예정됐다. 국내에서는 개봉일 전주 주말 ‘유료 시사회’라는 변칙개봉으로 빈축을 샀지만 KTX 열차의 속도감과 좀비 액션의 박진감 등이 “재난영화 장르에 신선함을 더했다”는 호평이 주를 이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일각에서 ‘신파적인 부분을 덜어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나오지만, 아주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적당히 조율된 신파였다고 생각한다”라며 “소재의 파격성도, 이를 과감하게 받아들인 제작사와 투자사의 전략도 통한 ‘기획영화의 잘된 예’”라고 봤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정유미 또한 최근 인터뷰에서 “‘부산행’은 돈을 제대로 써야 할 곳에 쓰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까지 홍상수ㆍ정성일 감독의 예술영화 다수에 출연하며 독특한 행보를 보여왔지만, ‘잘 기획된 상업영화’가 반가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반대로 ‘인천상륙작전’에는 “관객보다 기획자들이 먼저 감동해버린 영화”라는 혹평이 뒤따랐다. 2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사흘째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부산행’ 만큼의 폭발력은 아니지만 ‘흥행 불패’ CJ엔터테인먼트의 배급과 CJ CGV의 상영관 전략을 바탕으로 현재까지는 순항 중이다.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한국전쟁 중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한 연합군이 서울을 다시 수복하기 위해 인천항으로 진입하는 군사 작전을 다룬 작품이다. 이정재와 이범수, 그리고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의 출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 시사회 후 ‘147억짜리 반공 영화’, ‘국뽕(애국주의를 강요한다는 뜻의 은어) 영화’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애국심을 고취시켜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겠다는 기획의도에만 몰입한 나머지 영화의 완성도를 신경 쓰지 않은 것 같다”라며 “제작자들이 관객보다 앞서 감정에 취해있으니, 정작 관객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작보고회와 시사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는 이재한 감독, 주연배우들과 함께 영화 제작을 맡은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가 동석했다. ‘인천상륙작전은 기획영화’라는 제작자로서의 ‘위세’를 과시한 셈이다. 그는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전쟁의 참상을 통해 우리 젊은이들이 강한 안보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명백한 ‘기획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정지욱 평론가는 “사회상이나 최신 트렌드에 잘 맞춘 영리한 기획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적중시켜 흥행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추려고 하거나, 한쪽의 특정한 관객층만 목표로 ‘인코딩’하듯 영화를 찍어낸다면 넓은 관객의 마음을 살 수 없다”고 지적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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