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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태’ 250년만에 이름 되찾은 사연…“임연수어, 임씨와는 무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시인의 술안주가 되어도 좋다’는 원산앞바다 명태(양명문 시, 변훈 곡) 처럼, 명태는 노가리 황태 동태 생태 등 암수노소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큰 봉사를 하는 충직한 생물이지만, 조선초 부터 큰 아픔이 있었다.

250여년간 이름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명태의 한자표기 ‘明太’는 그 쓰임을 담았지만, 조선 전기부터 명 태조 주원장의 묘호 ‘明 太祖’와 같아서 사용을 금했기 때문에 조선 전기 문헌에서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1644년 명조 멸망으로 그 봉인이 풀리자 1652년 ‘명태’란 한자표기가 처음 사용되었고, 이후 200년이 지난 1855년과 1872년에 그 설화가 채록되었다. 이에 따라 한자표기 ‘明太’에 담겨진 본래 뜻은 망각되고 설화의 내용만 진실처럼 믿어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시대 명천 지방에서 잡혀 명태라고 했다느니, 맑은 동해바다에서만 잡혀 그랬다느니 하는 것은 본뜻과 전혀 무관하다.

임연수어는 함경도에 사는 수풀림자 성씨를 쓰는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이 처음 잡아서 그렇게 이름붙여졌다고 하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다. 임연수어는 한자표기 ‘臨淵水魚’가 맞다. 깊은 바다 가까이에서 잡히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도루묵은 임진왜란으로 피난갔던 선조가 피난처에서 맛본 뒤 감탄했다가 전란이 끝난다음 한양에서 먹어보니 그 때 그맛이 나지 않아 “도루물려라”라고 해서 이름지어졌다는 얘기도 거짓이다.

도루묵의 한자표기 목어(木魚, 目魚)와 은어(銀魚)인데 생태적 특징을 담고있다. 환목어(還木魚, 還目魚)와 회목어(回目魚)는 설화내용을 담고 있는데, 임진왜란때 선조얘기가 아니라, 조선 태조 이성계에 관한 얘기가 맞다. 1467년 이시애의 반란이후 함경도 사람들이 다시 변방백성으로 멸시되는 자신들의 처지를 도루묵에 빗대어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김양섭 전북대 무형문화재연구소 교수는 이처럼 잘못을 바로잡는 ‘임연수어, 도루묵, 명태의 한자표기와 설화에 대한 고증’이라는 논문을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의 민속학 관련 학술논문집인 ‘민속학연구’ 제38호에 실었다.

이 연구서(http://www.dbpia.co.kr)에는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 내성지 출토 ‘윷판형 암각화’의 상징성(장장식) ▷한국 우란분재(盂蘭盆齋)의 역사적 전개와 연희양상(최유진) ▷남사당패 어름사니 조송자의 연희 세계(이호승) 등도 실렸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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