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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다시 제기되는 기초의회 무용론
경남 의령군 의회의 이른바 ‘피의 각서’ 파문 충격이 쉬 가시지 않는다. 우리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기초의회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게 한심하고 부끄럽다. 의장 등 군의회 요직을 나누어 갖자는 은밀한 거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를 각서로 남긴다는 발상이 더 놀랍다. 그 약속을 어겼다며 의정 단상에서 피묻은 각서를 꺼내드는 장면은 그대로 한편의 싸구려 조폭 영화다. 

의령군 의회 의원 수는 모두 10명이다. 그런데 의장 부의장을 포함해 3개 상임위원장 등 ‘장 자리’가 5개나 된다. 의회 임기가 2년씩 전후반기로 나눠지니 웬만하면 임기중 돌아가며 한 자리씩 앉아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의원 수에 비해 높은 자리가 너무 많기도 하지만 그것도 권력이라고, 독식하려다 보니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긴 실망스런 기초의회가 어디 의령군 뿐이겠는가. 전반기 임기를 마친 전국 기초의회는 하반기 원 구성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온통 잡음 투성이다. 의장단 선거전은 혼탁 과열 양상이고, 지역 국회의원의 개입 논란 등 조용한 날이 없다. 심지어 의장 선거와 관련해 뒷돈이 오갔다는 소리도 들린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자리 다툼만이 아니다. 기초의회 의원들이 직위를 이용해 건설 등 이권에 개입해 검은 돈을 챙기는가 하면, 취업 청탁 관련 비리 등으로 쇠고랑을 찼다는 얘기는 이제 개도 안 물어가는 뉴스가 됐다. 이런 비리 의원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만치 않은 돈을 들여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니 세상이 이런 비효율이 없다.

그러면서도 활동비가 적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불평은 하늘을 찌른다. 얼마 전에도 시도의회 의장 협의회는 기초의회 의정활동비도 지금의 두 배 이상 올려야 한다는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기초단체 평균 재정자립도가 올해 크게 올랐다지만 50%를 살짝 웃도는 정도다. 아직도 기초단체 세 군데 중 한 곳은 자체 수입으로 소속 공무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 사정은 누구보다 기초의회 의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러니 기초의회를 없애는 게 차라리 낫다는 지적이 툭하면 나오는 것이다. 지역민은 관심도 없고, 예산만 낭비하는 기초의회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서울시 등 6대 광역시 기초의회 폐지를 제안 이유도 그랬다. 실제가 그럴만도 하다.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된지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의 정책과 살림살이를 감시하고, 지역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조례 제정이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만 하나 더 늘었을 뿐이다.

기초의회 혁신 논의가 수시로 제기되지만 좀처럼 행동으로 이어지 않는다. 이를 주도해야 할 정치권이 영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당장 정당의 기초의회 공천권부터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기초의회에 새 바람을 일으킬 젊고 유능한 정치 신인이 더 많이 등장할 수 있다. 기초의회가 스스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면 무용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 시작은 정치권이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정재욱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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