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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우환의 감성 vs 경찰의 이성…누가 진실을 말하나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그런 건 난 본 적 없다.”(캔버스 노후화 지적에 대해)

“그런 식으로 나는 사인한 기억이 없고,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K옥션 압수품 그림 뒷 편에 있는 사인이 다르다면서)

“내가 사인 안 하는 작품도 가끔 있다.” (사인이 다르면 가짜라고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 때 수없이 그린 걸 어떻게 기억하나.” (경찰이 압수한 13점을 그린 기억이 나느냐는 질문에 대해)
30일 기자회견에서 이우환 작가.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위작 시비에 휘말린 이우환 작가가 30일 1시간 가량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은 “그런 건 난 모른다”와 “내가 작가다”였다.

27일과 29일 각각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해 압수된 작품 13점을 본 후 “모두 진품”이라고 했던 이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캔버스 인위적 노후화, 일련번호 중복, 감정서 위조, 사인 위조 등 경찰이 제시한 대부분의 증거에 대해서 “그런 건 난 모른다”라고 말했고, “일일이 반박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경찰에 압수된 작품 중 캔버스 뒷면. 인위적 노후화 흔적이 뚜렷하다. 이우환 작가는 이에 대해 “그런 건 난 본 적 없다”고 답변했다. [사진=헤럴드경제DB]

이 씨는 “나는 피해자지 피의자가 아니다. 30~40년 전에 떠난 작품, 나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일에 얽매이게 되고, 여러분까지 혼란에 빠뜨리게 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너무 고통스럽다”며 감성에 호소했다.

경찰이 민간 감정위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압수한 13점에 대해 ‘위작’ 결론을 내렸고, 위조총책과 위조화가 등을 구속, 체포하고 이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우환 작가는 ‘진품’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캔버스 나무 틀에 물감을 칠해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흔적. [사진=헤럴드경제DB]

이 씨의 법률대리인인 최순용 변호사는 “위조범들이 위조를 했을 수는 있겠지만 압수된 13점이 그 위조품인지는 모르겠다는 취지”라며 이 씨의 진품 주장 이유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이날 이우환 작가는 “개인 화가로서 국가권력에 맞서고 있다”면서, “경찰 한 명이 13점 중 4점은 위작으로 하자 회유했다”는 폭로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씨가 없는 얘기를 지어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즉각 반발했고, 필요땐 법적 대응도 강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우환의 진품 주장 논리는?=현재까지 이우환 작가의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는 거의 없는 상태다. 심지어 경찰 회유설을 입증해 줄 녹화 영상도 없다. 지금까지는 이 씨가 작가 본인이라는 것, 작가의 말을 믿어야 한다는 감성적인 논리가 전부다.

이우환 작가가 13점을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작가 고유의 호흡과 리듬, 색채와 같은 주관적인 기준들이다. 그러나 이 씨는 “전세계 어느 작가도 자신이 쓰는 재료를 공개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호흡, 리듬, 색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단, 색을 쓰는 법에 대해서는 언급했다. 그는 “아사이 군청색 몇 가지(3가지 정도)를 섞어 쓰는데 그 사람들(위조범)은 한 가지 색만 썼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위조범들의 위작 재연 영상에 물감 제작 과정은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한 가지 색만 쓴 걸 알 수 있느냐”며 반박했다.

경찰 감정에 참여했던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이우환 화백의 이 말에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며 “위조범들이 쓴 물감의 성분 및 입자를 분석한 자료를 경찰이 이미 확보하고 있다. 압수된 작품들에는 물감이 섞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에 압수된 ‘점으로부터’를 400~600배 확대한 사진. 점을 찍은 후 덧칠을 한 흔적이 보인다. 이우환 작가는 고유의 호흡으로 획을 긋는다고 말해왔다. [헤럴드경제DB]

▶진위 가를 기준작 모르는데 전작도록?=이 씨는 경찰 뿐만 아니라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하 감평원)과도 대립각을 세웠다.

압수된 13점 중 일부에 지난 2012년 감평원으로부터 ‘진품’ 감정서가 나간 것이 있었는데, 당시 감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작가가 작품 사진을 보고 진품이 맞다고 해 보증서가 나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 씨는 “내가 보지 않은 건 확인서를 써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진품과 대조를 위해 기준작을 제시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기준작은 난 모른다. 그때 그때 다르다”고 말했다.

한달에 많게는 40여점 정도 그릴 정도로 다작했던 이우환 작가는 오래전 일이라 각각의 그림을 그린 기억이 없다는 주장이다. 가난할 때라 전시회를 매번 열지도 않았고 도록도 없다고 했다. 그림이 팔릴 줄 몰랐기 때문에 사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 화랑이 대신한 적도 있고, 일련번호도 제대로 매기지 않아 겹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자신의 작품들이 어디에 팔렸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현재 이우환 전작도록이 미국 소재의 도록 전문 출판회사에서 제작되고 있다. 이 화백 말에 따르면 진품들에 대한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향후 진위 판가름의 기준이 될 전작도록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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