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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소리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아가씨’ 김석원 음향감독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거기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요소가 있다면, 그건 바로 ‘소리’다. 소리는 영화 첫 장면이 페이드인(fade-in) 될 때부터 나타나 마지막 장면이 페이드아웃(fade-out) 되고 나서도 한참동안 거기에 있다. 너무나 당연히 있어서 알아차리기도 어렵지만, 소리가 없는 영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무성 영화 시대는 이미 오래전 저물었다.

그렇다면 소리의 역할은?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때때로 울게도, 웃게도 하는 것. 달리 말해 소리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일상의 소리를 채집하고, 효과음을 만들고, 영화에 덧입혀 예쁘게 포장해 관객에게 내놓는 일을 하는 사람. 음향감독은 “소리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아가씨’의 사운드 디자인을 맡은 김석원 음향감독(스튜디오 블루캡 대표)을 최근 남양주 영화종합촬영소에서 만났다. 

’아가씨‘의 사운드 디자인을 맡은 김석원 음향감독을 그가 운영하는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 내 ’스튜디오 블루캡‘에서 만났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한국 영화 사운드의 ‘장인’= CF만 2000여 편. 1980~1990년대의 김석원 감독은 CF 음악ㆍ음향계의 ‘다작왕’이었다. 당시 광고계의 블록버스터 격인 ‘코카콜라’ CF도 그의 손을 거쳤다.

“TV의 작은 스피커에, 들리지도 않는 소리”에 아쉬움을 느껴 영화로 처음 손을 돌린 것은 1995년. ‘돈을 갖고 튀어라’가 영화 음향감독으로서 그의 첫 작품이었다. 서울극장에서 시사회로 영화를 처음 본 김 감독은 “커다란 스피커로 소리가 흘러나와 관객이 울고 웃는 걸 보니 마음이 벅찼다”. 김 감독의 마음은 이미 영화로 기울어 갔다.

‘쉬리’(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실미도’(2003), ‘한반도’(2006), ‘부당거래’(2010), ‘도둑들’(2012), ‘건축학개론’(2012) 등 흥행작의 사운드는 모두 김 감독의 작품이다. 올해 들어선 조정래 감독의 ‘귀향’, 정지우 감독의 ‘4등’,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등을 작업했다. 박찬욱 감독과는 오랜 인연이다. 업계에서는 “박찬욱 감독은 김석원 음향감독과만 작업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그가 이끄는 스튜디오 블루캡에서는 연간 크고 작은 12~13개 작품을 도맡는다. 직원들은 각각 다이얼로그(후시녹음ㆍ내레이션 등 작업), 이펙트(Effectㆍ특수효과음), 폴리(Foleyㆍ효과음), 앰비언스(ambienceㆍ환경음), 믹싱(mixingㆍ최종 음향작업) 등의 파트를 담당하면서 협업한다. 김 감독은 ‘사운드 디자인’을 담당한다. 오케스트라로 치면 지휘자인 셈이다.

김 감독은 “영화의 이야기에 맞게끔 어떻게 소리를 디자인하고 배치할 것인가를 담당한다”라며 “언제 소리가 들려오고 빠지고, 어떤 색깔로 갈지 등을 총괄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소리는 영화의 시작과 끝”= 사운드 작업은 영화 크랭크인 전부터 시작돼 크랭크업 후에도 진행된다. 영화감독과 시나리오를 두고 사운드 디자인에 나서는 것부터, 촬영분이 들어오는 대로 동시녹음 현황을 살펴 추가 작업거리를 찾고, 배우들의 후시녹음을 진행하고, 촬영이 끝나면 편집본에 영화음악을 덧입히고 최종 믹싱 작업에 돌입한다. 이처럼 사운드 작업이 필요한 곳이 수만가지다.

김 감독은 “음향은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가는 작업이다”라며 “시나리오를 보고 액션영화라면 저음을 풍성하게 구성할지, 아니면 미묘하게 사람들이 숨죽이면서 보게 해야할지 성격을 잡는 것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서로를 속고 속이는 심리극인 ‘아가씨’는 후자를 택했다. 긴박한 추격전의 시끄러운 사운드도, 건물 붕괴음이나 폭발음도 없다. 하지만 ‘아가씨’는 작은 소리로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김 감독은 “박찬욱 감독은 다른 감독들처럼 전면에 내세워지는 소리를 원하지 않았다”라며 “소리를 작게 표현해서 여백이나 긴장감을 많이 살렸다”고 말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도 작업했지만 오히려 총 쏘는 액션영화 사운드는 쉬워요. 소리를 빵빵하게 잘 만드는 것보다 영화에 거슬리지 않게, 누를 끼치지 않게 사운드를 만드는 게 훨씬 더 어려워요. ‘아가씨’를 보면 ‘도대체 소리로 뭘 했다는 건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업한 게 없어 보여요. 그런데 진짜 많이 했어요.”

‘작고 깨끗한’ 소리를 만들기 위해 작업은 끝날 줄은 몰랐다. ‘아가씨’에서는 사운드 후반작업이 특히 길었다. 촬영 현장이 조명이 많은 목조건물 내부라 동시녹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조명에도 노이즈가 있거든요.” 예민한 음향감독다운 말이었다. “배우 대사도 정말 많이 후시녹음으로 덧입힌 거고요. 배우들 호흡 소리도 다 후시고요. 또각또각 신발 소리, 옷 스치는 소리, 물 소리, 처음부터 끝까지 다 폴리로 스튜디오에서 만든 소리예요.”

화면이 커질수록 사운드도 진화한다= 관객이 상영관에 들어서면 큰 스크린과 스피커로 영화를 감상한다. 최근에는 3D나 4D 등 더 많은 감각을 자극하는 특수 영화도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영화는 ‘시청각’ 매체다. 김 감독은 TV 광고ㆍ드라마 사운드와 영화 사운드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부분이 ‘화면 크기’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관객들이 진짜처럼 느끼게 해야 하는 거잖아요. 화면이 좋아지고 커지는 것도 정말 내 눈앞에서 뭔가가 벌어지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함이죠. 소리도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려면, 화면에 맞춰 점점 디테일해져야 해요.”

화면은 진짜 같은데, 소리가 옛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탁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화면이 커지고 디테일한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저기선 왜 소리가 안 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이에요. 그런 소리도 하나하나 채워줘야 하죠. 예컨대 ‘저 사람 움직이는데 왜 소리가 안 들리지?’ 이런 거예요. 그럴수록 소리도 꼼꼼해지는 거죠.”

’아가씨‘의 사운드 디자인을 맡은 김석원 음향감독을 그가 운영하는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 내 ’스튜디오 블루캡‘에서 만났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관객이 사람이라 다행이죠”= 영화 음향만 20년째. 아직 그에게도 도전적인 작업이 있을까. “아이고, 자연의 소리만 하겠어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는 “작업하는 우리도, 관객도 ‘사람’이라 참 다행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연의 소리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는 건데, 인간이 하는 게 되겠어요. 그래도 관객이 사람이라, ‘우리 편이라’ 너무 다행이에요. 게다가 한국 사람이고, 같은 세대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통하는 게 많죠. 우리가 무슨 소리를 들려주면 관객은 무슨 생각을 하겠구나, 라는 걸 알잖아요. 음향으로는 모티브만 던져 주면서 화면 밖에 있는 걸 상상하게 할 수도 있고요.”

김 감독은 출강하는 학교 학생들에게 “음향감독은 사운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영화의 사운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

“소리가 마지막 목표가 아니라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주파수가 예쁘고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놓고 ‘이 소리를 완성했다’고 자랑스러워 해요. 그런데 과유불급이에요. 그런 사람은 ‘영화 사운드‘를 하는 사람은 아닌 거죠. 영화의 이야기에 보탬이 되는 사운드가 좋은 사운드에요. 그 소리가 잡음일지언정 말이에요.” 김석원 감독의 ’소리 철학’이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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