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취재X파일] 회원 210만명 사이트 사기 사건...판결문, 신상정보가 틀렸다
-가입자 210만여명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전전세’ 사기 사건
-이용자를 개설자로 잘못알고 내린 판결, 항소심에선 감형될까?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나왔다. 국내 최대 부동산 직거래 인터넷 사이트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의 개설자 박모씨에게 사기죄로 징역 4년6개월이 선고됐다는 것이다. 가입자 수만 210만여명에 달하는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 개설자가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건 쇼킹했다. 판결문을 입수해 보니 전세로 빌린 아파트를 또다시 전세로 내놓아 보증금을 받고 돌려주지 않는 이른바 ‘전전세’ 사기였다.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스스로 부동산 직거래사이트를 개설해 수년간 회원에게 사기를 친 죄질이 불량한 범죄자로 그려진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1명을 상대로 약 30회에 걸쳐 7억여 원을 받아 챙겼다. 사기를 치기 위해 사이트를 연 것은 아닌지 의도가 의심될 정도다. 유사한 형식의 추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판결문을 기초로 기사를 작성해 보도했다.
그런데 기사를 내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이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개설자인데 자신은 징역형을 선고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카페를 개설한 뒤 계속해서 내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며 “상표권자로 등록한 뒤 유사 사이트를 철저하게 관리해 동명의 다른 사이트는 없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확인 결과 판결문이 틀렸다. 특허청에 등록된 해당 사이트의 상표권자는 강인걸(39) 씨였고, 박 씨는 사이트의 단순 이용자였을 뿐이다.
법원은 판결문이 틀렸다는 점을 인정했다. 법원관계자는 “(확인해 보니) 카페를 직접 개설한 것이 아니고 그 무렵 카페에 글을 게시한 것인데 검찰에서 공소장에 잘못 표기한 것 같다”며 “피고인도 재판에서 그 부분을 문제 삼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법원관계자는 “쟁점이 아닌 부분은 양측이 인정하면 그대로 인정 된다”며 “박 씨의 경우 범죄사실이 많아 수사기록이 많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양측이 다투지 않아 공소장 그대로 판결문에 기록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박 씨는 틀린 사실을 바탕으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을 담당한 판사는 박 씨를 개설자로 알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갈 문제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일각에서는 “문제없다”고 말한다. 개설자인지 이용자인지 여부는 판결을 내릴 때 중요한 정보가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판결문에 나타난 양형 이유에는 ‘개설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형사사건을 주로 맡는 A 변호사는 “박 씨가 사기죄로 기소된 만큼 사이트 개설여부보다는 사기 액수와 행위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그냥 지나쳐선 안되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정보가 향후 항소할 경우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B 변호사는 “판사마다 양형기준에서 고려하는 점이 다를 수 있다”며 “범죄 행위의 의도성 등을 중요하게 고려할 때 사이트의 개설자인지 이용자인지 등도 주요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피고인이 개설자인지, 이용자 인지 여부가 감형 요소에 반영될 수 있다는 의미다.
부장판사 출신 C변호사는 “항소심에서는 1심의 형량이 적당한지 여부를 다투는 게 일반적이다”며 “1심에서 발생한 작은 오류가 바로잡히지 않고 그대로 형량에 반영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피고인의 객관적 신상정보를 틀린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서초동의 D변호사는 “경찰 수사단계, 검찰 수사단계, 기소 후 재판단계에서 잘못된 기초 사실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며 “쟁점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기본 정보 확인에 소홀했던 것”이라 꼬집었다.
한편 피고인 박 씨와 검찰 측은 지난 7일 모두 1심에 불복해 항소했다.
yeah@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