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스포츠로만 듣던 쿠바 소식…단절의 50년 빗장 풀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쿠바 소식은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한국의 패배 뉴스와 함께 국내에 전해졌다. 어쩌다 한국이 강호 쿠바를 누르면 쿠바에 대한 인지도는 더 높아졌다. 지난 50년간 쿠바에 대한 한국민의 이미지는 그게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북한과 매우 친하고 북한 체제와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쿠바는 그저 1인 독재 체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같은 민족이라는 점 때문에 대화 노력이라도 해본 북한보다 더 멀고도 접근하기 어려운 나라로 인식돼 왔다.

6.25 한국전쟁때 까지만해도 나쁘지는 않았다. 미국의 후원을 받았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인 1949년 우리 정부를 승인하고 6·25 전쟁 당시 우리측에 물자를 지원했다.

그러나 양국은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후 일체의 교류를 끊었다. 지금까지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쿠바는 엘리트 스포츠를 국가의 최고 정책 가운데 하나로 삼을 정도로 집중 육성했다. 이는 북중미의 작은 나라 쿠바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선진 제국들을 차례로 제압하면서 만만치 않은 나라로 우리에게 인식됐다. 야구는 오랜 기간 세계 정상권을 지켰고, 축구를 제외하고 배구 농구 등에서 쿠바는 정상권을 넘나들었다. 상승세의 길목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한국이 야구에서 쿠바를 제압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와 쿠바가 조금씩 물꼬를 트던 2000년대 이후 일이다.

1999년 한국은 유엔 총회의 대(對)쿠바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해빙의 신호탄이었다. 이를 계기로 쿠바 측의 대(對) 한국 인식도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양국은 경제·통상 분야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교류의 물꼬를 텄다. 코트라(KOTRA)가 2002년 쿠바와 처음으로 무역투자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05년에는 쿠바 수도 아바나에 우리 무역관을 개설했다.

2005년까지 연간 4천만 달러 수준이던 우리나라의 대(對)쿠바 수출도 현대중공업의 발전기 수출 등에 힘입어 2006∼2008년에는 2억∼3억 달러 수준으로 늘어났다.

쿠바가 시장경제국가를 상대로 빗장을 조금씩 열었다는 것은 자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년전 LA다저스에서 한솥밥을 먹던 류현진과 쿠바 출신 푸이그는 절친이다. 푸이그의 별명은 ‘류현진 도우미’였다.

한국 야구가 쿠바를 스포츠 종목에서 이겼다는 소식은 2008년에야 들려왔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은 8연패, 그러나 2008년 이후 한국 야구는 쿠바에 4승2패로 우위를 점한다.

최근에는 쿠바에서 조금씩 일고 있는 한류열풍이 한국과의 정서적 거리감을 좁혔다. 2013년 쿠바에서 방영된 ‘내조의 여왕’, ‘시크릿 가든’ 등 한국 드라마는 쿠바 국민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쿠바를 찾는 한국 관광객도 지난해 7천5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 쿠바에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낭만이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한국에 알려졌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4~5일 사상 첫 쿠바방문이 경제적, 정서적 교류를 기반으로 외교관계 수립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abc@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