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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고등어구이와 닭도리탕의 누명
각종 예능프로와 온라인을 뒤덮은 ‘먹방열풍’에 숟가락을 얹어 보겠다는 얄팍한 꾀는 결코 아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메뉴라서 거론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미력하나마 오랜 시간 한국인들의 입맛과 영양을 책임져오고도 누명을 썼거나, 써왔던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픈 신원(伸寃)의 의미가 적합하겠다.

먼저 고등어. 구이와 조림으로 서민들의 든든한 한끼 반찬이 되어준 고등어는 지난 23일 ‘미세먼지의 심각한 원인’이라는 환경부의 주홍글씨가 찍히면서 졸지에 대역죄인이 됐다. 집에서 고등어를 구웠을 때 평소 대기중에 23배의 초미세먼지가 발생했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전혀 잘못된 연구는 아닐 것이다. 실제 가정에서 고등어를 구웠더니 갑자기 공기청정기가 맹렬히 작동하는 경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 나라의 대기와 국민들의 폐를 위협하는 미세먼지의 주범이라기엔 낯간지럽다. 디젤차량 매연에서 미세먼지가 훨씬 많이 나온다는 연구도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한반도의 대기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등어자반이 석쇠 위에서 뒤집혔다는 말인가. 메르스에 걸리지 않으려면 낙타를 조심하라는 말보다 조금 더 현실적일 뿐이다.

실제로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이 최근 공개한 ‘한국공기질 연구’ 영상을 보면 중국에서 엄청난 규모의 미세먼지가 번져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등어구이가 유죄라면, 중국에서 건너오는 오염물질은 능지처참이나 거열로도 부족할 것이다. 환경부 발표 하루만에 고등어 가격이 30% 폭락했고 이후에는 더 떨어졌다고 하니 미안할 따름이다.

닭도리탕의 한(?)은 고등어보다 깊다. 

오랜 기간 닭도리탕으로 불리던 이 음식은 92년 문화부가 닭볶음탕으로 고쳐 쓰도록했고, 97년 국어연구원이 ‘도리는 일본어 새가 어원’이라는 해석을 내리면서 철퇴를 맞았다. 국민오락 고스톱의 ‘고도리’라는 용어에 익숙했던 국민들은 큰 저항없이 닭도리탕을 버리고 닭볶음탕을 쓰기 시작했다. 뭔가 석연치는 않았지만 말이다.

닭도리탕이 무죄일 가능성을 제기해온 이들은 종종 있었다. 소설가 이외수씨 등은 “도리가 우리말인 ‘도려내다’에서 왔다”는 주장을 해왔으나 완벽한 면죄부를 주지는 못했다. 그러다 최근 권대영 한국식품건강소통학회장의 기고에서 ‘한일합병 이전부터 닭도리탕이라는 말을 써왔기에 일본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잘못됐다’고 밝혀 논란이 촉발됐다. 국립국어연구원은 닭도리탕의 명확한 어원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확실한 근거없이 닭도리탕을 일본의 잔재로 규정하고, 일반인의 사용을 금했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부적절한 단어로 규정되면 많은 불편을 초래한다. 2011년 ‘짜장면’이 표준어의 지위를 회복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그간의 탄압(?)에 분통을 터뜨렸던 이유다.

아직 고등어구이와 닭도리탕이 무죄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확실한 근거를 앞세워 이들을 괴롭혔던 마녀사냥이 조금은 수그러들 것 같다. 정부는 미세먼지의 원흉으로 고등어 대신 다른 이유를 찾고 있고, 국어연구원도 닭도리탕을 금지시킬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또 빼앗긴 건 무엇이 있을까.

- 김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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