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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비소리’ 해녀의 삶…깊은 나눔을 끌어올리다
죽음 각오한 물질 끝에 내뱉는 숨소리…어린해녀·마을 함께하는 공동체 정신 이어져…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만큼 소중한 가치


육지와 섬은 서로를 연모한다. 육지는 섬의 순수를, 섬은 육지의 다양성을 희구한다. 200만년 동안 육지를 그리워하던 제주가 그렇고, 뭍에서 각박한 삶을 살다 제주에서 힐링하려는 육지의 여행객이 그렇다.

제주의 순수를 목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지난 27일 서귀포에서 제주 3대 경승으로 꼽히는 남원 ‘큰엉’을 가기 위해 동쪽으로 가던 중 남원읍 체육관을 지나면서 요즘 보기 드문 광경을 목격한다.

컴컴한 바다 속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며 가정을 지탱해간 해녀들의 삶은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 문화의 메카로 우뚝 선 제주도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최근들어 해녀의 물질 풍경을 제주 북동지역 이외엔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사랑과 희생이 밑바탕이 된 해녀정신은 온 국민의 귀감이 되고, 제주의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남원읍 고령자 320여명이 마을 청년과 막내 딸ㆍ며느리뻘 부녀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차례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있었다. 체육관 구내식당 벽 현수막에는 ‘경로식당 행복한 마을밥상’이라고 적혀 있었고, 본관 건물에서는 서귀포의료원, 제주권역재활병원 의사, 간호사, 치료사, 복지사들이 어르신들의 몸 상태를 살피며 진단과 처방, 물리치료에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밖에서는 40, 50대 주민들과 택시기사들이 어르신들을 차량으로 연신 모셔오고 귀가시켜주고 있었으며, 마당 한켠 천막에서는 노인들에게 생활필수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남원읍새마을부녀회, 연합청년회, 제주 동부종합사회복지관,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회장 강승효 모범택시기사) 등이 한달에 한 번 여는 어르신 건강 토털서비스 한마당 풍경이었다. 행사를 진행하던 한 청년은 “옛날부터 어르신 모시고 이웃과 나누는,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인데요”라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도 뜸해서 죄송한데…”라고 했다.

남원 큰엉은 해식동굴을 낀 해안절벽 위 봉긋한 지형에 잔디가 자생하는 곳으로 1.5㎞가량 뻗은 산책길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날 이 곳에서 내려다본 시원한 바다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내 어머니, 네 아버지 할 것 없이 정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3년전 북동쪽 구좌읍 종달리 용눈이오름 옆에 레일바이크를 놓으면서 고령의 어르신들을 객차 질서 및 신호 관리 정규직원으로 채용한 제주 기업의 남다른 인정이 떠오른다.


또 학교 운영자금이 떨어지자 열심히 물질해 번 돈을 학교에 헌납했던 온평초등학교 재건의 산파, ‘성산의 그 해녀들’ 모습이 오버랩된다.

“칠성판을 등에 지고, 명정포를 머리에 이고, 저승길이 오락가락하는…” 해녀들의 민요에는 장례 때 쓰는 물건을 들먹이는 대목이 나온다. 또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해녀의 물질은 죽음을 각오한 사투이다.

해녀의 ‘숨비소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생명의 의성어이다. 1, 2분 잠수해 작업을 벌인 뒤 물위로 급히 올라와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소리이다. ‘쉬호이 쉬호이’하면서, 휘파람 소리가 섞인 거친 숨소리를 내는 것이다.

힘든 과정이기에 15~17세 무렵 애기해녀를 거친 잠녀(潛女)들에게는 폐활량, 수압에 견디는 눈과 귀, 찬물 견디는 능력에다 거대한 바다생물의 갑작스런 등장에도 당황하지 않는 담대함이 요구됐다.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으니, 함께 물질하는 어린 소녀나 할머니의 망사리에 미역 전복 소라 등을 한 웅큼씩 넣어주는 ‘개석’이라는 인정도 있었다. 그 인정은 ‘학교 바당(조업구역)’, ‘이장 바당’이라고 해서 학교가 어려울 때, 마을 일을 도맡아 심부름 하다가 생업이 불안한 이장을 도울 때 벌이는 ‘특별 근무’로 이어졌다.

해녀공로비가 세워진 성산 온평초등학교의 ‘굳세고 의로우며 참되게 자라자’는 슬로건에는 해녀할머니들의 사랑이 짙게 배어있다.

남원보다 하루 앞서 방문한 구좌읍 해녀박물관에 적힌 소녀 해녀의 한 마디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의 심금까지 울렸다. 소녀는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두렁박에, 시름을 달래주던 노래가 있으면 큰 돌고래 거북과 마주하던 컴컴한 바다 속도 무섭지 않았다”고 적었다. 사랑과 나눔은 죽음의 공포도 이긴다.

아기엄마가 되면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갑니다’라는 ‘섬집아기’ 풍경을 매일 되풀이해야만 했다.

날씨가 궂어 물질을 하지 못하는 날엔 여자였고, 엄마였다. 가족사랑을 확인하고, 살림에 필요한 물품을 만들며, 애들 크는데 필요한 것들을 장만했다. 한 해녀는 영상물을 통해 “동료와 함께 이겨내서 번 돈으로 내 소중한 자식들을 자랑스럽게 키워냈다”고 회고했다. 제주도는 해녀정신을 오늘날 발전한 제주의 밑거름이라고 천명했다.

매주 목요일에는, 가슴 찡한 체험을 마치면, 해녀들과 방문객이 해녀 민요에 맞춰 어울림한마당을 펼친다. 26일에도 해녀문화 전승자들과 남녀노소 중국인 관광객 20여명이 한바탕 춤판을 벌였다. 해녀문화 전승자들은 중국 어린이에게 북치는 법을 알려주고, 중국인 어머니들은 춤판으로 뛰쳐나와 퍼포먼스용 그물을 한국해녀와 함께 당겼다. 해녀들의 노고를 칭송하고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작은 축제였다.

풋감 즙을 묻혀 ‘갈옷’을 만들면 오래 입고 습기에도 강하다는 점을 알았고, ‘원양 물질’을 위해 태평양 연안의 ‘콘키티’호를 닮은 뗏목배 ‘태우’를 고대부터 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제주민의 창의력과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제주는 호국의 고장이기도 하다. 삼별초 항전때 육지에서 밀려 입도한 관군과 합세해 몸을 던져 외적과 싸웠고, 1909년에는 의병활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1919년 조천읍 미밋동산에서 3월 만세운동의 시초를 알렸다. 해녀들은 일제 수탈에 반발, 1931~1932년 구좌, 성산, 우도를 중심으로 238회에 걸쳐 연인원 1만7000여명이 저항운동을 벌였다.

좋은 자연환경이 좋은 사람을 만들었는지, 순수한 주민들이 세계적인 자연유산을 잘 지켜나갔는지는 따질 필요가 없다. 제주가 매력적인 것은 수려한 풍광 만큼이나 휴머니즘과 나눔 철학, 고난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정신력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안도로변 억센 땅을 뚫고 솟은 남원 표선의 민들레가 수줍게 육지 아저씨를 반기는 사이, 어느덧 도착한 제주민속촌에서는 제주의 철학과 문화를 한 눈에 볼수 있다. 인근 일출랜드에서 제주의 식생과 다양한 에듀테인먼트 체험을 하고 성산쪽으로 향하다 보면, 구좌읍과 성산읍 경계선 근처 도로에서 2열종대 수국들의 환대를 받는다. 사람이 좋고 마음씨가 좋으니, 제주에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용왕의 아들과 선녀 간 못다이룬 사랑이 깃든, 스크린셀러 관광자원 섭지코지를 가보지 않고, 다문화 가정 며느리들이 출신 나라 손님들을 극진히 모시는 제주 황금 시티투어 버스 타보지 않고는, 제주를 가봤다고 말할 수 없다. 이들 모두 제주의 창의력과 나눔 사랑이 빚어낸 작품들이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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